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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2013년8월24일 방송분 (c)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3년8월24일 방송분 (c) SBS

위험한 가족
보험설계사 경력의 할머니를 필두로 하여 온가족이 보험사기극을 펼치고, 그에 더해 장애인연금과 보험금을 타내기 위하여 그집의 어린이들을 장애인으로 만든 가족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공동체의 안녕(安寧)을 위하여 우리는 힘을 모은다. 부모가 경제활동을 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양이지만, 나이든 부모를 부양하거나, 부모의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어린 나이에 소년소녀가장이 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한 가족의 부모들은 보험사기를 통한 불법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었다. 보험사기를 위해 지인들을 희생시키는 소시오패스[엔하위키]적인 행태로서 ‘엄여인 보험사기사건[엔하위키]’이 대표적인데, ?이번 사건이 그것보다 무섭고 놀라운 점은 하나의 개인이 아닌, 한 가족의 광기(狂氣)라는 것이다. 개인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잘못된 선택은 집단 안에서 질타받고 교정된다. 결정에 참가자의 숫자가 늘수록 일반적으로 그만큼 반성의 기회도 늘어나는 것인데, 그들은 교정의 기회를 놓치고 완전히 잘못된 삶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3층에서 추락하여 하반신장애를 갖게 ?된 소녀의 입장에서 사건 정황을 상상해보았다.

‘할머니로부터 친엄마는 보험사기를 배웠고, 그것은 가족의 유일한 생계방식이다. 다른 가족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이미 몇차례 크고작은 교통사고를 통해 보험금을 타냈고, 엄마도 몇차례 보험을 타냈다. 그런데 이제 보험조사단의 의심이 심해져 엄마나 의붓아버지는 더이상 보험금을 타내기가 어렵게 되었다. 오빠도 지난 사고로 이미 장애인이 되어 장애인 연금을 타내고 있다. 이제는 내가 가족을 위해 일해야할 때가 왔다. 공기와도 같은 가족들이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친엄마는 내가 이 창문에서 뛰어내기를 원하고 있다.’

피해소녀의 엄마가 그녀를 다치게 하고 치료를 미룬 정황이 확실해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보험사기혐의로 유치장에 갇힌 엄마를 진실로 그리워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방송에서 보여줬다. 비록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장애의 불편에 밀어넣었을지라도 그녀에게 밥을 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바로 그 엄마이다. 그녀는 다른 삶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위험한 국가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더 크게는 국가를 위해 스스로의 노동력을 기꺼이 할애한다. 급여의 약15~30%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있으니,?인생의 2/3는 나 혹은 가족을 위해 일하고, 나머지 1/3은 국가공동체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그 개인들의 시간이 환원된 돈(세금)으로 외침(外侵)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무력(武力)을 키우고, ?공동체의 생활을 위한 인프라시설을 건설하거나, 복지라는 이름으로 낙오될 위험에 처한 공동체 구성원을 돌본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합의된 공동체와의 계약이다. (사회계약설) 하지만, 위의 부모가 잘못된 돈벌이를 하고, 지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자녀들을 그 돈벌이에 사용한 것처럼, 국가권력도 개인에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예는 역사상 수없이 많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1인승어뢰, 回天 KAITEN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1인승어뢰, 回天 KAITEN

위의 설계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해군의 1인승 어뢰, 카이텐이다. 직접 적군의 전함에 돌진하여 자폭하는 어뢰로서 바다의 카미카제[위키백과]라고 할 수 있는 무기다. 일제는 그들을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으로 칭송하며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았다. 일본정부는 공동체를 수호하려는 이러한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는 미화를 하고, 개인을 죽음으로 이끈 집단의 광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본 정치인들의 지속적인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침략전쟁의 정의에 대한 최근 아베 일본총리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위험한 가족’에 대한 방송을 봤을때, 이러한 역사적 광기를 떠올린 것은 나의 심한 비약일까?

이 가족들의 삶의 방식에 느낀 경악을 우리 국가 공동체의 행위에도 적용하여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가족이 집단으로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듯이 우리 공동체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위험한 가족’처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힘이 약한 소수를 장애인으로, 죽음으로 몰고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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