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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나의 영어회화 능력수준이 낮다보니, 베를리너들 사이에서 나는 중학생 정도의 자아로 지냈다. 나의 발음을 현지인들이 못알아듣는 것이 미안했고, 모르는 단어는 내가 되물어봐야 했으니 항상 양해를 구하기 위해 미소짖고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대화의 깊이가 낮은 것은 당연한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보다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더 쉬운 단어를 선택했고, 보다 쉬운 토픽을 주로 얘기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다.

내 예술세계나 예술비평에 대한 것, 작품 설치에 관한 것들은 비교적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안녕”, “어디서 왔니?”, “아, 거긴 무엇이 유명하지?”, “이 단어는 너희말로는 뭐라고 하니?”… 뭐 이런.. ^^;; 마치 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들의 커뮤니케이션같은 느낌이랄까?

적절한 호감을 바탕으로 인류가 이 정도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세상이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예술도 일종의 대화라고 봤을때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색채나 형태를 그저 제시하거나 (사고작용에 비하여)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도의 예술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낮은 깊이의 예술은 빨리 이해할 수가 있고 관객의 스트레스 또한 적어서 예술소비자의 진입장벽이 낮다. 반대로 지속적인 연구나 토론의 가치있는 주제로 회자되기는 힘든 것이 또 단점이겠다.

나는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지식을 가진 고도화된 문명을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소통과 협업은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만을 거듭하는 사회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차가운 세상’이고,  낮은 깊이의 대화를 거듭하는 개인은 다차원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깊은 대화자에 비해 도태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피곤한 조직사회의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낯설게 보고, 바보가 되어보는 것. 현지인들 사이에서 모험하고, 아이처럼 서투른 대화자가 되어 하루종일 미소지으며 다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느꼈던 휴식과 경쾌한 느낌을 나의 대중적인 작품 라인에서도 드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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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저물고, 페이스북에서 피로감이 과중되어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이것으로도 설명할 수도 있겠다. 페이스북은 전투적인 정치적 입장의 충돌 메세지로 인해 피로감이 심하다. 하지만 이성적인 토론과 사고를 피하게 되는 SNS미디어의 발달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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