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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회고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김구림 회고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Artinfo]를 보러갔다. 김구림은 60년대에 아방가르드 그룹을 결성하여, 당시 한국에서는 드물었던 다양한 아방가르드 예술실험을 했던 선구적인 인물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그대로 전시회의 제목으로 차용한 것도 그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폄하한 시절에 관한 은유인 것이다.

김구림 회고전, 서울시립미술관

김구림 회고전, 서울시립미술관

나를 혼낸 도슨트
전시장은 그런 작가의 실험들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으니,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전위물인 레디메이드 작품[네이버백과]과 퍼포먼스의 흔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액자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화가 아닌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할때, 우리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품이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구분해내야 한다. 한쪽엔 위의 사진처럼 그의 퍼포먼스에 쓰였던 오브제를 그대로 전시-판매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의문의 빈 공간이 있었다.(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화면을 밝게 조정하였다.) 미술 전시장에서 어두운 방을 접하면 관객들은 으레 그 공간을 비디오상영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빨간 진입금지 라인이 있었으니, 나는 무슨 어둠 속의 설치미술품인 줄 알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뒷통수를 찌르는 신경질적인 외침이 있었다.

“거기 들어가시면 안돼요.”

도슨트의 불친절한 안내였다.
선을 지키면서 어둠을 응시하는 나의 태도에는 진입의 의도를 느낄 수 없었을텐데. ‘전시작품’이 아니라고 곁에 와서 속삭이는 것도 아니고, 조용한 미술관에서 8미터 정도되는 거리에서 뒷통수에다 소리를 치다니! 이것은 마치 ‘보지마시오’라고 적어놓고 그 아래에 구멍을 뚫어놓은 격이 아닌가? 미술관은 본디 보러가는 곳 아닌가? 나는 그 몰상식한 도슨트에게 되물었다. 도슨트는 창고처럼 쓰는 공간이라는 대답이었다.

제일 먼저 전시기획자는 비상식적인 공간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고, 그런 공간이 발생했으면 그 공간 앞에 설명을 붙여야 했다. 도슨트는 호기심에 가득찬 가장 관람객다운 열성적인 태도를 꾸짖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이 정숙해달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소리를 칠 수 있나?

전시기획자가 지인이라서 안타깝지만, 나는 120에 전화를 걸어 도슨트의 태도에 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다 아는 나도 이렇게 기분이 나쁜데, 시골 할머니가 서울구경이라도 와서 그런 상황을 겪으면 어땠겠는가? ‘이 고약한 놈의 미술관 다시는 가나 봐라!’ 이런 마음 아닐까?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인가?

나의 전시
현재 전시를 준비하는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전시장은 보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들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나의 작품을 사주는 사람과 응원해주는 사람, 나의 작품을 벤치마킹할 동료나 후배, 지나가다 들르는 관객에게도 각각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나에게 귀한 관람객들이고, 클라이언트! 나의 갑(甲)들이다.

나는 작품 사진을 비교적 잘~자주~ 찍고 있다. 굳이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을 왜 전시하나? 작품을 보러 오라고 하고서 굳이 ‘만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붙여야 하나? 도자기는 만지는 기쁨도 크다. 맨질맨질한 도자기 표면을 만지고 있으면 부드러움이 기분을 좋게 한다. 물론 하루에도 수백명이 들르는 미술관의 관객대응 태도와 수십명 만을 상대하면 되는 갤러리 전시의 그것을 단순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 불편한 경험으로 내 전시를 더 완벽하게 기획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끙

얼마나 잘하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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