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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한창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어느때보다 월드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홍명보를 감독으로 앉혔고, 감독이 된 그는 기성용, 박주영 등을 기용하여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로 삼았다. 그런데 이들은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부족한 성품과 파벌의식을 드러냈다. 홍명보의 과거 열하나회 사건, 박주영은 병역기피와 거짓말, 기성용의 최강희 감독을 향한 막말파문 등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면면을 드러냈고, 최강희 감독체제에서는 해외파 선수들 중심의 올림픽팀 출신 선수들이 국내파 선수들을 따돌리는 상황을 연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기보다는 또 다른 소집단을 만든 모양새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되자,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한민국팀을 응원하게 된다. 아무리 저주스러운 인성의 팀이라도 ‘대한민국이 기본은 하는 팀이구나’라는 해외의 인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홍명보와 박주영의 팀이 기적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꼴을 보고싶지는 않지만, 16강 정도의 성적은 내기를 원한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마찬가지일까? 이란, 호주, 일본 등 아시아의 팀들이 저조한 성적을 반복하면 아시아에게 주어진 4.5장의 아시아쿼터가 축소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을 응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데도, 일제시대에 대한 구한(舊恨)과 일본과의 정치적인 긴장관계 때문에 아시아연대로서 편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반면 일본TV에서는 한국의 편에 서서 응원하는 중계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정 차이일까? 아니면 대동아공영을 꿈꿨던 그들과의 배포의 차이일까?

어디까지가 우리이고, 어디서부터가 너일까?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는 오늘날의 지구 위에서 우리는 국가라는 굴레를 벗고 개인주의적 태도를 추구한다. 필요에 따라서 우리가 되기도 하고, 네가 되기도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교육의 발달, 번역기술의 발달로 국제적인 친구들이 늘어가고, 국가라는 아이덴티티가 약화되는 오늘날, ?출신국가라는 굴레보다 팀칼러에 맞는 아이돌 축구선수를 조합해놓은 클럽팀에 더욱 동질감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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