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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매거진 충무로에 실린 원고입니다.)

작업실의 위치와 작업실에서 만난 사람들로 나의 삶을 돌아본다.

2010년도에는 최신 기술이 집약된 일본의 고층빌딩에서 IT기업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비교적 높은 급여와 부러워할만한 복지를 보장받았지만, 나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담고 번민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일부가 아닌 나, 그 자체로서 세상에 기억되고 싶었다. 결국 6년간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듯 작가에겐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문래동, 성산동, 다시 문래동, 이태원을 거쳐 현재 을지로3가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13년에 다시 돌아온 문래동 공동작업실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즈음 도자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건축과 출신의 작업실 메이트에게 목공을 배웠다. 주변의 소공인들과 친목을 바탕으로 금속을 이용한 오브제도 손쉽게 제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작품을 바탕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전시까지 초대받게 되었다. 문래예술공장의 예술지원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메이드인문래>라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도 제작할 수 있었다. 문래동에서 1년 반을 지내고, 적절한 시기에 이태원의 예술공간의 매니저를 맡으며 작업공간을 얻어쓰게 되었다.  문래동이 생산지였다면 이태원은 소비지였다. 엣지있는 숍들과 개성있는 맛집들이 즐비했고, 패셔너블한 감각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안 되어 경영악화로 운영을 멈추면서 나는 급하게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을지로3가의 어느 공동작업실의 문을 두드렸다. 을지로3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공동작업실에 짐을 옮겨 넣고 곧바로 독일전시 준비로 출발해야 했다. 다시 돌아와 나는 을지로의 편의성을 실감했다. 7개월간 공동작업실을 오가며 인근의 공실이었던 지금의 사무실을 발견하여 2016년 1월부터 임대하여 쓰고 있다.

을지로의 매력은 시내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생산지라는 점이다. 다양한 재료들을 걸어가서 살 수 있다. 문래동처럼 철공소도 있고, 조명가게들도 있고, 지류를 살 수 있는 방산시장도 가깝고, 옷감을 살 수 있는 동대문 종합시장도 자전거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을지로3가 사거리에는 유리가게와 볼트집이 있고, 청계천 쪽으로는 각종 장비 도소매점, 을지로4가에는 목재상들이 있어,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바로 무언가를 만들기에 편리하다. 타카와 콤프레셔 등의 목공장비도 구매하여 직접 나무로 인테리어 시공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실의 책장, 창고, 선반, 소파, 테이블 등 거의 모든 것이 각목과 합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세운상가에서 스피커 전선 등도 길이에 맞춰 재단하여 좀 더 도전적으로 스피커를 배치할 수도 있었다. 교통이 좋아 클라이언트를 불러 내부에서 미팅을 잡기도 좋다.

을지로의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통이 편리한 서울의 중심이면서도 월세는 면적에 비해 비싸지 않은 편이다. 내가 입주한 이 빌딩도 60년대에 지은 건물로, 입주하면서 화장실을 서양식으로 교체했고, 300만 원을 들여 바닥을 새로 고쳤다. 이러한 매력으로 을지로 일대에 아티스트들이나 작업자들이 계속 모이고 있나 보다.

내가 자리 잡은 이곳은 아크릴 집이 있었던 자리였고, 사거리의 모서리 자리이다 보니 커다란 간판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부동산에 전화하여 공실임을 확인하고 임대를 결정하면서 커다란 간판을 어떻게 꾸밀까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하였다. 고민하면서 커다란 빌보드를 하나의 납작한 깃발로 보고, 스튜디오 이름을 플랫플래그 (Flat Flag)라고 붙였다. 사다리차를 불러야 해서 총 60만원의 비용이 들었고, 간판 사이즈를 잰다고 쟀는데, 실제로 붙여보니 모자라서 시트를 더 사다가 붙이고, 차량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제지를 받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간판은 혼잡한 글자 간판 사이에서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로 눈에 잘 띄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간판을 기억해주고 있다.

사람은 당연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의 팀 분위기, 동료와의 하모니가 삶의 만족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작가에게는 작업실의 동료들과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3년의 문래동 작업실 동료들은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역할이 되어주었다. 이태원에서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접객이나 공간 운영의 노하우를 익혔고,  당시 공간의 특이한 지분체계로 인간관계와 계약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2014년에 처음 사용했던 을지로의 공동 작업실은 동료작가들이 자주 나오지 않던 탓에 거의 혼자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새로 작업실을 구하기 시작했던 것은 작업실을 통해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작업실 동료와 시너지를 내며 한 발짝 더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모자 디자이너에게 함께 작업실을 운영할 것을 제의했다. 공동의 거실을 쓰고 각자의 작업공간을 갖는 형식이었는데, 같이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클라이언트와의 의견 차이로 엎어지면서 나와 동료디자이너는 공간을 공유할 뿐, 공통분모가 상당히 없어지고 말았다. 동료디자이너가 짐을 빼자,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동료 디자이너가 나가고 두 달 뒤, 나는 대만에 3개월간 초청레지던시를 다녀왔고, 2016년 12월에 새로운 작품 제작을 의뢰받아  나는 새로운 어시스턴트를 고용했다. 근데 계약금까지 받은 새로운 작품 제작도 클라이언트의 사정으로 또다시 취소되고 말았다. 해외에서 초청을 받고, 종종 패션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고 해서 간단히 생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 둬야 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둘의 클라이언트의 결정에 내 삶이 휘청거리는 것이 짜증이 났다. 금전적으로 해결책이 필요했던 나는 손 놓았던 디자인 작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때마침 합류했던 어시스턴트가 유능한 디자이너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업실을 아트앤디자인 스튜디오로써 다시 한번 새롭게 탈바꿈시켰고, 홈페이지도 리뉴얼하였다. 새롭게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하다 보니 아직은 저렴하게 디자인을 만들어 주면서 다양한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받고 있다. 디자이너와 함께 9개월을 작업하며 스튜디오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구축하였고, 이제 스튜디오의 미래 모습을 함께 꿈꾸기에 이르렀다.

준비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로 2013년에 그럴싸한 개인전을 처음으로 열고 나름 4년을 작가라고 불리며 시간을 보냈는데도, 스스로 생계의 사이클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나의 인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 거친 세상에 홀로 선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 각 부서가 역할을 달리하는 대기업을 다니다 보니 몰랐었는데, 이제 홈택스로 전자세금계산서도 발행할 줄도 알고, 세무사도 쓸 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실은 내가 하나의 경제인으로서 우뚝 선 기념비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다.

www.studioflatflag.com
서울시 중구 충무로 55-1 3층

월/화/수/금 10AM~5PM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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