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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1월의 시작은 3박4일 토쿄 워크샵으로 시작했다. 나는 토쿄디즈니씨에 대해 좋은 기억들이 있었고, 디자이너라면 최고 컨텐츠 기업의 테마파크를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의 의도로 이번 워크샵에서 가장 중요한 코스로 잡아두었다. 하지만, 새벽 비행기에 이어, 열차를 타고, 큰 테마파크를 걸어다니고, 기구 앞에서 줄을 서다보니 힘들어서 좀처럼 텐션을 끌어 올리기가 힘들어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제 힘들 나이인가?^^;;) 여느때와 같이 독특한 브랜딩의 호텔과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좋은 영감을 주었다. 중간에 하루는 개별일정의 시간을 두었는데, 나는 렌탈 자전거로 내가 살았던 고탄다 – 유텐지 – 시로가네 타가나와를 둘러보고, 내가 일본에서 누볐던 추억의 장소들을 다녀보았다. 벌써 10년이나 흘러버렸다. 그때의 꿈꿔왔던 삶을 살고 있는지,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가 앞으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과 함께 사원복지로 주어진 주2회 운동도 즐겁게 하고 있었으나, 중국발 코로나19 전염병의 국내 확산으로 피트니스센터를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환불받는데도 2달이 넘게 걸렸다. 전세계인을 히키코모리로 만드는 고통의 시간이 열려 버렸다.

1, 2, 3월까지 스튜디오의 디자인일은 적은 편이었다. 일이 적을때는 이모티콘 개발에 힘썼다. 이모티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서 내리 2번의 심사를 통과했는데, 그 뒤로는 내내 반려되었다. 3월말에 클레이파크에 구인글을 올려 주말에 나와 일해 줄 공예직원을 뽑았다. 좋은 실력과 긍정적인 태도의 친구가 합류하게 되어 공예스튜디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여수 1박2일 워크샵을 다녀왔다. ‘여수랑’이라는 이름의 공유자전거로 숙소 주변의 해변을 탐색했다. 벌써 8년이나 지나 빛바랜 여수엑스포의 건물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여수밤바다’라는 노래는 여전히 여수 관광지 곳곳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지겨울 법도 하다. 여수를 여행하는 동안 내 머리 속에 내내 멜로디가 맴돌았다. 문화컨텐츠란 이렇게 대단한 것이다. 여수는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음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들에게는 미소 짓는 벨루가와 형형색색의 수중생물을 볼 수 있는 한화 수족관이 좋은 볼거리였다.

이모티콘이 통과가 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인스타툰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캐릭터를 먼저 띄우고, 이모티콘을 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인스타툰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일러스트레이션에 더욱 특화 시키고자 2개월 동안 프로젝트를 도와줄 브랜딩 디자이너를 뽑아 보았다. 손발이 잘맞으면 계약을 연장하려고 하였으나 흡족하지 않았다. 새로운 클라이언트의 전체 브랜드 리뉴얼을 디렉팅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브랜드의 브랜딩 디자인, 영상, SNS를 한꺼번에 손 보기 때문에 좋은 포트폴리오를 산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좋지 않은 클라이언트였다. 처음 공장으로 촬영을 갔는데, 업체 대표는 5명 정도의 직원들에게 폭언을 서슴치 않더라. 헐~

420만원을 들여 화장실을 수리했다. 정말 귀신나올 것 같은 화장실을 오래도 썼다. 손님들도 많이 이용했는데^^;; 고치고 나니 그 전의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 문제의 클라이언트의 카페가 오픈하였다. 웹사이트도 잘 만들어드렸는데, 오프라인용 메뉴를 제작함에 있어서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나이 드신 여성 대표(할머니)는 메뉴판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톤앤매너의 조절, 합리적인 정보의 취합이 전혀 되지 않았고, 심지어 논리적 결론 도출도 아예 회피하였다. 왜 그러지? 머리를 쓰기 싫으신 것 같다. 그냥 마음에 들게 알아서 가져오라고 하고, 무한반복을 시킬 셈이었다. 세상에서 처음 만나보는 유형의 두뇌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새로 뽑은 직원들 중에 제정신인 사람은 금새 그만두었고, 오래된 직원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말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로보트처럼 말을 옮기거나 행동할 뿐이었다. 나는 잔금을 손해보고 프로젝트에서 손을 털고 나왔다.

공예 직원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해 준 덕에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워킹 머그, 하피, 둠둠월드 피겨 등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공예 결과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도자기라는 방식은 불량률도 너무 높아서 상업화가 도통 쉽지 않다. 계속 연구 중이다.

지인의 소개로 중국기업의 바디케어 계열 제품 브랜딩과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예전에 대만 음료 회사에게 의뢰 문의를 받았던 경험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어 의뢰 받은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의 세련된 디자인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의 디자인 회사를 찾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본다면 한국디자인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위챗으로 소통하며 무리 없이 디자인을 전달해줄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해외 클라이언트 작업을 늘리고 싶다.

올해는 이례적인 한달반의 긴 여름장마가 이어져 건물의 노후로 인한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곰팡이가 생겼다. 6월의 화장실 공사에 이어, 9월에는 옥상방수 공사, 11월에는 내부 천장 보강과 도색을 다시했다. 옥상 방수 공사를 위해서 옥상에 설치했던 화단과 많은 물건들을 치웠다. 이 작업실을 얻고 나서는 옥상파티도 하고, 옥상을 아기자기하게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한가하던 시절이 상상불가다.^^ 옥상 방수공사는 건물주 부담으로 400만원, 천장보수 및 페인트시공에 130만원이 들었다. 여기 작업실을 이용한지도 6년째가 되다보니 입주에 맞춰 준비했던 시설이나 전자제품은 어느새 많이 노후한 상태가 되어 교체나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천장의 메인조명도 40만원 정도 재료비를 들여서 레일조명으로 깔끔하게 교체하였다.

1년반 넘게 함께 일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퇴사를 했다.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좋은 결과물을 함께 만들었고,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이용한 일러스트 기술을 전파해주었다. 궂은 일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를 특히 높이 평가했다. 이모티콘 프로젝트가 더 큰 성과를 만들었다면 좀 더 다른 계약형태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제안해봤을텐데, 이모티콘 사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스타툰의 연재도 그와 함께 멈춰섰다. 떠나는 사람을 잡는 성격도 아니기에 퇴사 의사를 밝힌 후 한달을 더 같이 일하며 벌렸던 일을 정리하였다. 얼굴 붉힐 이별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이 남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마음에 구멍이 난 느낌이긴 했다. 공동창업자인 방 디자이너와는 언제 어떻게 이별하게 될까?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공교롭게 일러스트레이터의 생일이 11월이라 송별회 같은 생일파티를 하였고, 제임스터렐의 작품과 안도타다오의 건축으로 유명한 산뮤지엄을 이별여행 같이 다녀왔다.

바로 급하게 구인을 하지 않고 두달간은 방 디자이너와 둘이서 디자인하면서 인테리어를 개선했다. 중간벽을 없애고, 책장의 파일함도 뒤집어 사용한다든지 새로운 눈으로 최대한 깔끔한 레이아웃을 만들었다.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둘이서 작업을 하다보니 둘이서 초창기에 일했던 경험들이 많이 떠올랐다. 2020년의 디자인매출은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경제불황의 상황 속에서도 2018년, 2019년에 이어 적절한 우상향 곡선을 만들어 냈다. 예술작업에 신경을 못썼지만, 스플플의 사업을 상당히 안정화 시킨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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