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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Posts by YOMSNIL

  1. 1. 당연히 좋은 실력과 선한 인성은 기본이다.
  2. 2. 그룹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관찰하고 그 역할을 실행해야 한다.
  3. 3. 대답을 빨리 하고, 밝은 텐션을 유지하여야 한다.
  4. 4.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직원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요구되는 조건이다.

올해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자주 올리지 않아, 한해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구글포토를 보며 회고를 쓰다보니 몸으로 했던 일과 사람, 공간에 대한 기억이 중심이 된다.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카테고리별로는 다시 정리하겠다.

1월
BANG-N-YOM의 전시 오프닝을 마치고 필리핀 보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잠실전 전시까지 최선을 다하고 난 뒤 우리는 좋은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전시를 철수하고 작품들이 돌아오자 작업 공간이 부족했다. 많은 작품들을 옥상에 쌓아두어야 했다.

2월
직원을 한명 더 뽑았다. 디자이너 포지션으로 직원을 구했는데 훌륭한 그림실력의 지원자가 응모해주어 반갑게 맞이하였다. 마치 록밴드처럼, 아트디렉터-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의 포지션이 조화롭게 구축되었다.

3월
부모님 집을 꾸미는 것을 도와드렸다. IKEA를 처음 이용해보았고, 공간구성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인사이트가 생겼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업무에 잘 적응하였고, 셋이서 쿄토로 3박4일 팀워크샵을 다녀왔다.

4월
1월부터 스튜디오 확장 이전을 고려하였지만, 현재의 사무실처럼 매력적인 곳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근처의 마땅한 15평의 사무실을 렌트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하B동) 도예 작업과 목공 작업 등 예술제작이 가능하도록 꾸미기로 하였다. 공예전공의 어린 친구를 팀원으로 불러들였다. 4월20일부터 계약하고 바닥과 벽을 까내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5월
B동의 인테리어 업무는 나와 공예팀원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나갔다. 공예로는 아직 수익구조가 구축되기 전이어서 사업구상을 하며 공예팀원은 주3회 출근으로 손발을 맞춰나갔다. 디자이너와 2박3일 제주도 출장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자연과 푸른 하늘이 기억에 남는다. 5월초 공구를 사러 ACE센터에 들렀다가 너무 많은 물건을 손에 쥐고 쇼핑을 하다가 아이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고장이 났다. 그동안 느꼈던 불편과 부담스러운 수리비를 핑계로 다시 삼성 안드로이드폰으로 돌아왔다. 며칠간이라도 업무관련 앱알림을 못받는 상황이 몹시 불쾌했다. 이런 핸드폰 파손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기록해둔다.

6월
A동 전면에 2년전에 설치했던 나무 액자를 떼고 60만원을 들여 만든 근사한 철제 쇼윈도를 설치하였다. A동 사무실 천장의 지저분한 페인트도 벗기고 다시 바르고, 철망을 이용하여 LED조명을 말끔하게 설치하였다. 각목으로 장식장도 예쁘게 다시 설치하였다. 나왕 다루끼(강목), 샌딩머신, 레이저 수평계와 이중기리드릴, 나사못을 이용하여 저렴하고 소박하지만 튼튼한 선반의 형식미를 만들어냈다. B동에 전동블라인드를 설치하고, 중고로 90만원에 물레, 300만원에 중고 전기가마를 구입하여 설치하였다. A동 B동 모두 꾸준히 인테리어를 개선해나갔다.

7월
6월말 처음 제일기획 쪽에서 갤럭시 노트10의 체험관에 관련하여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 제의가 들어왔다. 도자기 작품의 구입과 렌탈을 원했고, 공예작업을 위한 인력과 환경을 구축해두었던 참이라 반갑게 일을 받아들였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45일 정도였다.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내가 도자기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특히 두가지 흙을 섞어서 쓰는 바람에 소성하고나면 수축률이 달라서 도자기에 크게 금이 가고 접합 부분이 떨어져 나갔는데, 세번째 가마까지 망친 끝에서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공예팀원에게도, 나에게도 집중력과 인내를 요하는 시간이었고, 도전의 시간이었다.

8월
퀄리티에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었지만, 약속했던 대량의 납품을 이루어 냈다. 공예팀원은 B동을 구축하고, 삼성의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키맨으로서 활약하였지만, 수차례의 대화에도 불손한 태도를 교정하지 않아 이별해야만 했다. 나는 실수에 대해서 놀랍도록 관대한 대신 신경전을 하는 사람을 주변에 둘 여유는 없다. 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경 쓴 납품을 마치고 1박2일 속초로 워크샵을 다녀왔다. 군포문화회관 전시에 madeinmullae 작품을 새로운 디스플레이와 함께 출품하였다.

9월
90센치 어항을 정리하였다. 해수어항에 매달 드는 돈이 너무 많았고, 주렁주렁 외부로 드러나는 호스가 미관상 좋지 않았다. 청주 라비에벨 골프장에 설치되어 있는 하피 골프피겨를 보고서 구매를 원하시는 미국 콜렉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작하여 미국으로 보내드렸다.

10월
삼성의 잔금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4박5일 보라카이 팀워크샵을 다녀왔다. 보라카이의 핑크색 바닷가는 꿈과 같은 시공간이었다. 고용주로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버리는 일이라서 부담스럽지만, 함께 하는 여행은 소중한 추억이고, 브랜딩 디자이너로서, 또 창작자로서 좋은 자극이 된다. 국민대학교와 한성대 시각디자인과, 디자인대학원에 특강을 4회 나갔다. 월말에는 가평으로 가을 캠핑을 다녀왔다.

11월
11월엔 업무가 많았다. 10월의 리플레쉬 덕분인지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사진이 없다. 업무에 관해서는 다시 정리하겠다.

12월
12월 초반엔 일이 없어서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월말에 이래저래 일들이 들어와 문제없는 한달을 보낼 수 있었다.

예술 수입 ★ ★ ★ ★ ★
전국 규모로 여러곳에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유명 가전 기업의 신제품 체험관을 장식하는 콜라보레이션 전시로 큰 수입을 만들어 냈다. 기대와는 달리 다른 여러 작품들과 산만하게 섞여서 전시되었고, 아트굿즈도 작가의 파이널체크를 받지 않고 출시하는 등 전체적으로 만족하기 어려운 과정과 결과물이였다. 내 욕심에 차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은것으로 만족했다. ‘예술계에서 나만의 색깔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이런 금전적인 보상을 만들어 낼 수 있구나’, ‘내가 보내온 시간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밖에 Made In Mullae가 전시초대를 받았고 하피 골프피겨가 팔렸다. 일정 면적을 운송비 포함 100만원에 꾸며달라는 전시는 거절하였다.

디자인 수입 ★ ★ ★
5월, 6월, 7월, 9월 수익이 저조했고, 최종 수익도 예상에 조금 못미치는 금액이었다. 일이 적게 들어올 때는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광고를 더 집행하는 것이 방법일텐데, 광고를 더한다고 바로 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년 단위로 사용할 광고비를 책정하고, 추이를 보며 과감하게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에는 보다 영리하게 디자인계에서의 입지를 높이는 활동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사무실을 늘렸고, 구성원이 늘어난 만큼 고정비가 크게 늘었다. 새로운 수익목표를 세워 그것을 달성해나가야겠다.

이모티콘 수입
제품 2개가 심사를 통과하였고, 4개가 반려되었다. 긍정적으로 예측했던 수입에 미치지 못했다. 5개월간 300만원에 못미치는 수익은 실망스럽지만, 배송 등의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없이도 꾸준히 수익을 발생시키는 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인력관리 ★ ★
디자인팀의 인력관리는 잘되었다. 기억나는 특별한 야근은 없었고, 초과근무시간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을 쿠폰처럼 축적하였다가 업무시간에 플러스, 마이너스하며 활용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공예직원의 경우에는 나의 많은 관용에도 동료에 대하여 신경질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고치지 못하였고, 함께 일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지만 교정하지 못했다. 경영자를 쉽게 등지는 성격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자주 얘기한다. 같이 술 마시고 노는 것은 쉽지만, 함께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인성, 실력, 배려, 센스가 모두 필요한 것이 동료의 조건이다.

총평 ★ ★ ★
2019년에는 구성원을 4명까지 늘려보고, 공예작업실을 구축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 사업이라는 것이 돈이 있으면 재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리여서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2018년에 비해 외주사와의 트러블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커뮤니케이션스킬이 늘었다 할 수 있겠다. 후반기에 공예작업실을 활발히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이모티콘은 초반2연속 통과와 4번 연속 미승인을 통해 통과의 전략과 메가히트의 전략을 구상 중이다. 구성원 3명의 손발이 잘 맞아서 2020년에 더 큰 기대를 걸게 된다.

을지로3가역 2분 거리의 4층 15평 짜리 공예 스튜디오를 쉐어합니다. (총2명 이용)

월이용료는 선불 25만원/ 월 2회의 초벌, 재벌 가마를 제공합니다.
( 초과 이용시 0.14루베 한가마 기준 초벌1만원, 재벌 2만원 받습니다. 반가마는 1/2)

– 단독사용 시설: 1200x500mm 사이즈의 책상과 의자, 책상과 연결된 기물대
– 공용 사용 시설:
wifi
인버터 물레
스커트 산화가마 0.14루베
시유 장비
각종 유약 (대량 사용시 별도 구매)
미니 포토 스튜디오
각종 목공구 (핸드쏘, 에어콤프레셔, 건타카3종, 디스크샌더)
3D 프린터(대량 사용시 필리멘트 별도 구매)
바테이블

공간이 더 필요한 경우, 더 만들어드리거나 조절해드립니다. 입주를 원하시는 분께서는 yomsnil@gmail.com으로 연락주시거나, yomsnil 카톡아이디로 연락주세요.

15평 스튜디오 창가 전경, 햇살 가득 (광각 카메라 주의)
입구쪽 전경 (인버터 에어컨, 싱크대)
1200 x 500 데스크와 기물대
공용 바테이블
스프레이 부스
공용 물레
0.14루베 스커트 가마
스텝퍼를 이용하여 높은 선반도 활용 가능
핸드폰으로 그냥 찍어도 잘 나오는 포토 스튜디오
다양한 유약들
우측 데스크가 대여공간(광각 주의)

1월의 전시를 끝내고, 전시장에서 돌아온 짐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2018년을 마무리한 것으로 느낄 수 있어 이제야 회고를 한다. 그 어느때 보다 성공적인 한해를 보냈다. 세웠던 거의 모든 목표들을 모두 이뤄냈다.

스튜디오 플랫플래그 ★★★★★
2018년초에 계획했던 연간 매출액을 9월에 이미 달성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에게는 4대보험을 들어줬고, 2년차 디자이너로서 업계 최고수준 대우라고 자부할만한 급여와 복리 후생을 제공했다.

브랜딩 디자인 업무 ★★★★★
대부분의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 다. 다만 한 클라이언트와는 트러블이 있었다. 지구상에 있을 수 없는 결과물을 기대하는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가 문제였다.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그 기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서 초반에 잘라내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중간에 과감하게 일을 거부해야겠다. 브랜딩 디자인 업무에서 확장하여 인테리어를 직접 콘트롤한 업무가 하나 있었다. 마무리 과정에서 추가비용이 들어 힘들었다. 앞으로 인테리어 컨셉까지만 관여하고 집행은 타업체에 넘기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겠고, 직접 콘트롤하는 경우에는 클라이언트가 추가 견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조건을 제시하고 계약해야겠다.

캐릭터 디자인/ 스티커 개발 ★★★★
그림을 잘 그리는 지인 디자이너가 실직을 하여, 파트타임으로 고용하여 캐릭터 제작과 스티커  작업을 진행하였다. 흥미로운 스토리 위에 캐릭터와 브랜딩을 결합하여 누가 봐도 탁월한 작업을 만들어 제출 했지만, 캐릭터 공모전 주최 측에서는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업계 상황을 알고 있다 보니, 부당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좋은 결과물을 손에 넣었기에 앞으로의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캐릭터 디자이너는 크게 실망하여 그 이후로 모티베이션을 잃었다. 카카오에 제출했던 스티커는 통과하지 못했다. 캐릭터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했고, 올드한 느낌의 라인처리가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정답은 없다. 스티커 담당부서 MD가 딱 보고 잘 팔릴 것 같다는 판단이 서야 하는데, 이는 종합적인 판단이라 MD에게 어느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는 부분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MD가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야 한다.

예술활동 ★★★★
3월에 롯데갤러리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BANG-N-YOM이라는 팀으로 2018년 11월 청량리점, 2019년 1월 잠실점에서 초대전을 개최했다. 모자람 없는 전시비용은 받아 안정적으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회를 받아 최선을 다했다. 10월부터 디자인회사로서의 광고를 중단하고 기존에 받은 일을 마무리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스케치업으로 도면을 작성하였고 회의를 통해 둘의 테마를 정하여 페인팅 신작을 전개하였다. YOMSNIL은 개인전을 몇번이나 한 작가지만, BANG-N-YOM은 신인작가인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끊어지기 전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작품활동을 이어가야겠다.

교육 ★★
공주대에서의 UI/UX 수업은 계획했던 것처럼 성공적 피드백을 얻지 못했다. 내가 워낙 유튜브로 배우는 것이 많다보니 유튜브를 활용하여 학습하는 방법 자체를 알려주었는데, 이것에 대한 강의 평가가 무척 좋지 않았다. 내가 최근 게임업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탓도 있었을 것이고, 업무에 밀려 수업에 대한 준비가 다소 부족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본 학과는 디자인전공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교육하는 것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강의한 3개 학기의 수업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의 리더로서 팀원을 대하는 방식과 비슷한 자세로 학생들을 대했다. 좋은 커리큘럼을 먼저 수립하고 학생 모두를 잘 보듬어 주어야 한다. 교육자로서 더욱 소양을 키우고 다양한 방법의 교육컨텐츠를 만들어 나가겠다.

프로젝트A ★★★
프로젝트A는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조아제약의 협찬으로 운영하는 장애아동 미술교육 프로그램이다. 특수교육은 물론 아동교육에 대한 경험도 없었던 나에게는 도전적인 과제였다. 나는 초보교육자로서 두려움이 컸고, 비교적 장애 정도가 적은 소녀를 멘티로 선발하였다. 5개월간 격주로 주말에 장애아동과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언제나 교육 전과 교육 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멘티의 사물 관찰 능력과 재현 능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썼다. 하지만, 멘티는 쉽게 포기하고 집중력이 짧았다.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왜 멘티가 쉽게 포기하는지를 알아냈다. 애를 따로 맡기기 힘든 환경 탓에 남동생도 함께 수업에 참여시켰는데, 멘티는 남동생이 형상을 더 잘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집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리반 선생과 헬렌켈러의 일화처럼 멘티를 고립시켜 집중력을 키우는 것은 흔한 사례인데, 나는 그런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연히 이는 운영진에서 더 신경써주면 좋았을텐데, 가끔 운영진과의 회식에 가보면 그런 교육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사실 운영진의 고민이 깊지 않음은 여러곳에서 드러났다. 도담도담이라는 장애아동 여름특강의 경우 2회 연결된 커리큘럼을 전달했음에도 이를 공지하지 않고 신청을 받아, 수업당일 급히 수업내용을 바꿔야했을 정도였다. 작가로서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습 ★★★
2018년 2월에는 Zbrush를, 9월에는 C4D를 토요일마다 5회씩 배웠다.  C4D는 디자이너와 함께 수강하였는데, 3D프로그램을 더 만져본 나보다 디자이너의 프로그램 습득/ 이해능력이 더욱 뛰어나 놀라기도 했다. 열심히 해야겠다! 다사다난했던 스케쥴에도 적극적으로 수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배운 뒤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바로 연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이어서 진행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대학원 ★★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의 스마트디자인 엔지니어링학과에서 파격적인 장학금 조건이 발표되어 지원하였다. 영어수업이나 디자인 방법론은 좋은 자극이 되었지만, 가장 집중하여야 하는 전공수업은 최악의 교수와 엉터리 커리큘럼이었다. 나도 강의를 해본 사람으로서 교육자에 대해 관대하게 마음을 가지려 하지만,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교수였다. 5일의 업무시간 중 4일을 빠지니, 회사의 업무진행에도 차질이 없지 않았다. 내가 대학원에서 하려고 했던 것은 이론 연구적인 태도를 습득하고 실제적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이었다. 자퇴를 결심했으니 이를 내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구축하여야겠다.

 
벌이는 괜찮았으나, 벌이에 비해 돈을 모으지 못했다. 이래서 적금이 필요한 것이로구나.

2019년 계획
– 3월부터 디자이너를 한명 더 고용하였다. 신입사원이 소외되지 않도록 함께 실력을 키워 좋은 팀웍을 만들겠다.
– 사람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스튜디오 매출이 필요하다. 국내 경제에 대한 많은 비관론에 대비해 일본시장 개척을 준비 중이다.
– 예술활동 10개 이상의 페인팅 작품을 만들고, 전시기획을 준비해놓겠다.
– 3D프로그램 활용하여 이미지, 조형물, 상품 만들기.
– 3000만원 모으기.
– 꾸준히 돈들여 PT를 하다보니;; 드디어 운동이 틀을 잡았다. 이제 드디어 王자를 만들 때가 된 것 같다.
– 카카오 스티커 제작

HAFY는
Happy Alternative Functional Youths
(행복한 대체가능한 기능적 젊은이들)의 이니셜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염승일(YOMSNIL)의 캐릭터 프로젝트입니다.

HAFY는 현시대를 대체할 신인류를 은유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싸우고, 협력하며 시간의 너머로 진화해나갈 그들.
형태적으로 머리 위의 다양한 모양의 뿔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유전자 다양성을 상징하고, 뻥 뚫린 눈은 그들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HAFY의 모습에서 현재의 인간군상들과 미래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hafy #yomsnil #하피 #hafyhat #diversity #유전자다양성 #다양성

2017년은 신작 없이 작은 전시와 하나의 설치 퍼포먼스를 제작하고는, 줄 곧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브랜딩 디자인 외주 업무에 매달렸다. 2월달에 처음 클라이언트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근 10여년간 오랜 디자이너로서 일해왔지만, 디자이너로서 사업을 해본 적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일지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신경 쓴 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하루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디자이너와 나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공동 저자로 성장하였다. 이 협력을 통해 나는 이미지 제작자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 냈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을로서의 일이라서 피곤할 것 같은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때때로 클라이언트와의 부조화로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화와 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것이 연륜인가보다.

브랜딩 디자인은 하나의 브랜드에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형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위한 의미부여와 작문, 심벌 디자인,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 제작은 내가 하고 싶었던 예술행위와 꽤 유사하다.

직업이 주는 행복감
예를 들어 가수라는 직업을 떠올려보자. 가수라는 직업의 일상의 행복 요소를 구분지어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 25%, 무대에서 나에게 집중되는 관객의 시선 25%, 나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 25%, 부와 명예 25%. 가수를 만나면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행복감의 정도, 퍼센테이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예술활동의 기쁨은 무엇일까? 내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25%,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25%,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 25%, 글을 쓰는 행위 25%. 대략 이 정도이지 않을까?

나만의 것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 저자성
내가 고액연봉의 회사까지 그만두면서 예술을 하겠다고 했을때 가장 큰 이유는 저자성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NAVER나 NCsoft가 아니라 내가 한 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플랫플래그는 앞으로도 개성있는 디자인과 작품들을 만들 것이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지향할 것이다. 방지숙 디자이너는 나의 디자인적인 단점들을 정확히 짚어내어 교정시켜주고 있다. 그녀의 천재성에 일주일에도 두세번 씩은 놀란다. 그 파트너가 너무 잘나거나, 너무 못나도 저자성이라는 것을 함부로 나눌 수 없을 텐데, 나는 기꺼이 그녀와 나누고 있다. Yomsnil이 만드는 작품 이외에 Bang & Yom이라는 예술 작가 듀오로서의 작품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NAVER에 다니는 연봉 높은 남자 또는 유능한 동료로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뭣도 모른채 꿈꿨던 미래의 모습은 화가였다.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좋아서 화가라는 꿈을 꾸었고, 학교에 다니면서는 그림 잘그리는 친구로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즐겼다. 나는 반에 하나쯤 있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나의 결과물로 그렇게 사랑받는 방식이 나는 익숙하다. Pictoplasma Berlin의 추억은 어떠한가? 3~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박수를 받고, 뒷풀이에서는 서양인들이 사인을 요청해왔다. 한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큰 행복이다.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어렸을때는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상당히 즐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도 그 결과물을 즐기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이것 내가 만든거야’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이 좋다. 유년시절부터 회화와 조소작업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2013년부터는 얼굴이 그려진 도자기로 유명해졌고, 사랑받았다. 을지로3가 사거리에 커다랗게 나의 캐릭터 얼굴을 걸어놓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더 통용될 수 있다고해도 유니크하지 않은 심볼을 만드는 행위는 그 행복감이 적을 것 같다. 내것이든 내것이 아니든 구분이 안가는 것은 내가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글을 쓰는 행위
바쁘게 일을 만들어 살아가는 성격에 글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말년의 꿈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글로서는 커다란 100m 조형물을 세울 수도 1000명이 등장하는 화려한 쇼 무대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문자는 그림과 다른 방식으로 가슴(두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브랜딩 디자인의 유사성
자, 브랜딩은 어떠한가? 브랜딩 디자인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의해서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저작은 엄연히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작업 결과물로서 홈페이지에 디자인을 올려 전시하고 있다. (나만의 것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저자성) 작년부터 디자인을 시작하여 현재 지속적으로 일을 주고 있는 두 업체가 있다. 우리의 디자인 작업은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브랜딩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 아직 고정 클라이언트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일을 끝맺을 때 클라이언트의 좋은 반응이나,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의뢰를 받을 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브랜딩 디자인은 심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워드마크도 물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만, 심벌을 만드는 행위에서 더욱 우리의 개성을 드러낸다.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정립하고, 때로는 네이밍에 참여하면서 스토리텔링을 글로 풀어낸다. 이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업무내용이다. 물론 이것도 클라이언트에게 만족감을 주고 수월하게 채택이 될 때 기쁨이 배가된다. (글을 쓰는 행위)

그래서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고, 아티스트로서도 지속가능성을 획득했다. 2018년은 안정된 클라이언트 작업을 바탕으로 다시 예술의 영역을 강화할 예정이다.

2018년 계획
– 올해 디자이너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4대보험도 들어줬다. 세무사에게 세무업무를 위탁하였다. 하나의 회사로서 더욱 형식미를 갖춰나가자.
– 브랜딩 디자인 스튜디오 2년차를 맞아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더 큰 매출을 기록하길 기대한다.
– 올해도 수업을 맡았다. 1학기는 창업 프로젝트와 게임 UI/UX 수업을 맡았다. 잘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
– Bang & Yom으로 비주얼 아트 작품을 제작할 것이다.
– Yomsnil로서는 조아제약 후원의 프로젝트A를 통해 멘토로 활약하며 전시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좋은 교감과 자극이 될 것 같다. 신작의 아이디어는 아직 잡아두지 않았다.
– 카카오톡 스티커를 개발하고 싶다. 새로운 캐쉬카우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 2019년 카페 오픈을 위해 돈을 모을 것이다. 기회가 오는 순간,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나잇살에 더해, 2017년엔 일에 열중하느라 식단관리에 소홀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고 있는데도 체중이 점차 증가했던 점을 반성. 올해는 보다 좋은 몸매, 건강한 육체를 가꾸어야겠다.
– 올해 Zbrush, Cinema4D, Fusion360, Sketchup을 꾸준히 더 연마할 것이다.

아무쪼록 2018년 연말에 더 큰 영광과 보람에 웃음지을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다.

(매거진 충무로에 실린 원고입니다.)

작업실의 위치와 작업실에서 만난 사람들로 나의 삶을 돌아본다.

2010년도에는 최신 기술이 집약된 일본의 고층빌딩에서 IT기업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비교적 높은 급여와 부러워할만한 복지를 보장받았지만, 나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담고 번민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일부가 아닌 나, 그 자체로서 세상에 기억되고 싶었다. 결국 6년간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듯 작가에겐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문래동, 성산동, 다시 문래동, 이태원을 거쳐 현재 을지로3가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13년에 다시 돌아온 문래동 공동작업실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즈음 도자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건축과 출신의 작업실 메이트에게 목공을 배웠다. 주변의 소공인들과 친목을 바탕으로 금속을 이용한 오브제도 손쉽게 제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작품을 바탕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전시까지 초대받게 되었다. 문래예술공장의 예술지원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메이드인문래>라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도 제작할 수 있었다. 문래동에서 1년 반을 지내고, 적절한 시기에 이태원의 예술공간의 매니저를 맡으며 작업공간을 얻어쓰게 되었다.  문래동이 생산지였다면 이태원은 소비지였다. 엣지있는 숍들과 개성있는 맛집들이 즐비했고, 패셔너블한 감각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안 되어 경영악화로 운영을 멈추면서 나는 급하게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을지로3가의 어느 공동작업실의 문을 두드렸다. 을지로3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공동작업실에 짐을 옮겨 넣고 곧바로 독일전시 준비로 출발해야 했다. 다시 돌아와 나는 을지로의 편의성을 실감했다. 7개월간 공동작업실을 오가며 인근의 공실이었던 지금의 사무실을 발견하여 2016년 1월부터 임대하여 쓰고 있다.

을지로의 매력은 시내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생산지라는 점이다. 다양한 재료들을 걸어가서 살 수 있다. 문래동처럼 철공소도 있고, 조명가게들도 있고, 지류를 살 수 있는 방산시장도 가깝고, 옷감을 살 수 있는 동대문 종합시장도 자전거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을지로3가 사거리에는 유리가게와 볼트집이 있고, 청계천 쪽으로는 각종 장비 도소매점, 을지로4가에는 목재상들이 있어,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바로 무언가를 만들기에 편리하다. 타카와 콤프레셔 등의 목공장비도 구매하여 직접 나무로 인테리어 시공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실의 책장, 창고, 선반, 소파, 테이블 등 거의 모든 것이 각목과 합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세운상가에서 스피커 전선 등도 길이에 맞춰 재단하여 좀 더 도전적으로 스피커를 배치할 수도 있었다. 교통이 좋아 클라이언트를 불러 내부에서 미팅을 잡기도 좋다.

을지로의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통이 편리한 서울의 중심이면서도 월세는 면적에 비해 비싸지 않은 편이다. 내가 입주한 이 빌딩도 60년대에 지은 건물로, 입주하면서 화장실을 서양식으로 교체했고, 300만 원을 들여 바닥을 새로 고쳤다. 이러한 매력으로 을지로 일대에 아티스트들이나 작업자들이 계속 모이고 있나 보다.

내가 자리 잡은 이곳은 아크릴 집이 있었던 자리였고, 사거리의 모서리 자리이다 보니 커다란 간판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부동산에 전화하여 공실임을 확인하고 임대를 결정하면서 커다란 간판을 어떻게 꾸밀까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하였다. 고민하면서 커다란 빌보드를 하나의 납작한 깃발로 보고, 스튜디오 이름을 플랫플래그 (Flat Flag)라고 붙였다. 사다리차를 불러야 해서 총 60만원의 비용이 들었고, 간판 사이즈를 잰다고 쟀는데, 실제로 붙여보니 모자라서 시트를 더 사다가 붙이고, 차량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제지를 받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간판은 혼잡한 글자 간판 사이에서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로 눈에 잘 띄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간판을 기억해주고 있다.

사람은 당연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의 팀 분위기, 동료와의 하모니가 삶의 만족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작가에게는 작업실의 동료들과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3년의 문래동 작업실 동료들은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역할이 되어주었다. 이태원에서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접객이나 공간 운영의 노하우를 익혔고,  당시 공간의 특이한 지분체계로 인간관계와 계약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2014년에 처음 사용했던 을지로의 공동 작업실은 동료작가들이 자주 나오지 않던 탓에 거의 혼자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새로 작업실을 구하기 시작했던 것은 작업실을 통해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작업실 동료와 시너지를 내며 한 발짝 더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모자 디자이너에게 함께 작업실을 운영할 것을 제의했다. 공동의 거실을 쓰고 각자의 작업공간을 갖는 형식이었는데, 같이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클라이언트와의 의견 차이로 엎어지면서 나와 동료디자이너는 공간을 공유할 뿐, 공통분모가 상당히 없어지고 말았다. 동료디자이너가 짐을 빼자,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동료 디자이너가 나가고 두 달 뒤, 나는 대만에 3개월간 초청레지던시를 다녀왔고, 2016년 12월에 새로운 작품 제작을 의뢰받아  나는 새로운 어시스턴트를 고용했다. 근데 계약금까지 받은 새로운 작품 제작도 클라이언트의 사정으로 또다시 취소되고 말았다. 해외에서 초청을 받고, 종종 패션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고 해서 간단히 생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 둬야 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둘의 클라이언트의 결정에 내 삶이 휘청거리는 것이 짜증이 났다. 금전적으로 해결책이 필요했던 나는 손 놓았던 디자인 작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때마침 합류했던 어시스턴트가 유능한 디자이너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업실을 아트앤디자인 스튜디오로써 다시 한번 새롭게 탈바꿈시켰고, 홈페이지도 리뉴얼하였다. 새롭게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하다 보니 아직은 저렴하게 디자인을 만들어 주면서 다양한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받고 있다. 디자이너와 함께 9개월을 작업하며 스튜디오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구축하였고, 이제 스튜디오의 미래 모습을 함께 꿈꾸기에 이르렀다.

준비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로 2013년에 그럴싸한 개인전을 처음으로 열고 나름 4년을 작가라고 불리며 시간을 보냈는데도, 스스로 생계의 사이클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나의 인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 거친 세상에 홀로 선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 각 부서가 역할을 달리하는 대기업을 다니다 보니 몰랐었는데, 이제 홈택스로 전자세금계산서도 발행할 줄도 알고, 세무사도 쓸 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실은 내가 하나의 경제인으로서 우뚝 선 기념비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다.

www.studioflatflag.com
서울시 중구 충무로 55-1 3층

월/화/수/금 10AM~5PM OPEN

 

YOMSNIL 2013~2017 POPUP SHOW at KLEE, SEOUL
HAFY Coushion
HAFY Doll Poster
Pakcage Design of HAFY Doll 1
Pakcage Design of HAFY Doll 2
Pakcage Design of HAFY Doll 3
Walking guys are walking, at the exhibition 2015

2016년은 글을 전혀 못썼다. 1월 작업실을 오픈하고는 여유시간마다 작업실의 환경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중독성 강한 취미다. 그래도 한해가 저무는 마당에 2016년을 회고하고 정리해 두겠다.

을지로3가, 스튜디오 플랫플래그
나는 2015년 이태원을 나와서 을지로3가의 공동 작업실을 7개월간 사용했다. 을지로3가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을지로의 작업편의성과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고, 오며가며 봤던 좋은 자리를 계약했다. 패션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함께 시작했지만, 서로가 생각했던 것들이 달랐음을 깨닫고 그가 떠나, 5월부터 1인 체재로 운영하고 있다. 좋아하는 목공, 페인팅, 컴퓨터 작업에 적당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므로 이제는 수익창출을 하여야.

어시스턴트
2016년에는 총 5명의 어시스턴트와 함께 했다. 국민대 실내디자인과 3학년 A, 같은과 4학년 B, 사진리터칭을 잘했던 C,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D, E , 패션디자인과 F, 현재 같이 일하고 G까지. A는 센스도 있는 편이고, 작업실 초기에 시설구축에 많은 일을 함께 했지만, 5개월째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하지 않은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아직 미성숙한 모습이었다. B는 내가 부족한 3D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차분한 성격에 많은 가능성이 있었지만, 6개월을 함께 일하고 취업을 했다. 내가 더 많은 급료를 줄 수 있고, 경험을 열어 줄 수 있었다면 잡았을 것 같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던 C는 기술을 성숙시킬 시간이 모자랐다. D는 본질을 흐리는 커뮤니케이션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이 없어 책상은 본드와 칼자국이 늘었다. E도 시간이 모자랐던 편이다. 저학년이다보니 컴퓨터 스킬도 부족했다.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스러웠다. F 역시도 컴퓨터 스킬이 부족했고, 무단결근과 정직하지 않은 면을 보이기도 했다. 12월에 시작하여 3주를 함께 보내본 G는 일단 여러면에서 만족스럽다. 나는 컴퓨터와 인쇄 스킬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고, 내가 G에게서 모르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G의 감각을 키우려고 미술관에 데려가고 있고, G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일거리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G는 충분치 않은 급료에 동의해주었고, 나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배려해주고 있다. 2D에 관해서는 기존의 어시스턴트에 비하여 높은 수준이고, 적극저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철학과 비젼을 공유하며 G의 합류를 계기로 미니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모두가 고마운 인연이지만, 맞는 시기와 상태가 있다. 재미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거듭나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거칠게 사람을 평가하는 듯 하지만, 그들과 나의 교감과 대응을 기억하기 위해 적어둔다.

G창업프로젝트
윤대표의 소개로 4월부터 10월달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를 위한 금전적인 지원이 있었고, 창업스쿨을 통해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필요한 공부를 했다. 나 스스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맞춤형 창업지원은 협약기간이 일주일 정도 겹치는 바람에 1차 합격 후 면접이 취소되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짐작케 했다. G창업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상품을 디벨롭시킬 수 있었고, 보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고 있다. 2017년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정부사업에 지원해야겠다.

Folio Daan Hotel Artist Residence program
생애 첫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치렀다. 특별히 응모와 심사 절차 없이 아키노리 오이시 작가의 소개로 직접 초대되었다. 전시를 기획하였으므로 5월부터 메일을 주고 받기 시작하여  타이페이에서의 생활과 전시는 올해의 가장 큰 이슈였다. 다른 레지던시에 비하여 푸본 아트파운데이션은 많은 것을 준비해줬지만, 첫 해외레지던시 경험이어서 그런지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레지던시라는 사업이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호텔에서 세달이라는 장기투숙자의 삶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아키노리 오이시 작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에 들어간 수도승의 기분이었다. (그런 고독과 독백의 시간 속에서도 집필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는 현지에서 제작하기 버거운 컨셉의 전시를 기획했고, 한국을 오가면서 끝내 기획대로 전시를 이루어냈다. 기대치에 비하여 전시의 퀄리티는 80%, 현지의 반응은 60%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집객이 어려운 갤러리였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아무튼 2016년의 1/4을 투자했던 것 만큼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대만의 커넥션을 계속 활용할 수 있어야 겠다.

서울오케스트라 협연  – 예술인 파견
많이 준비했고, 소정의 공연비도 지급되었고, 내 돈도 많이 썼다. 아쉬운 점은 남았다. 완벽한 드레스리허설이 필요했다. 완벽한 드레스 리허설을 통해 카메라 촛점도 맞췄어야 했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어느 이벤트이던 아카이빙이 필요하고 30만원의 별도 예산을 준비해두자. 특히 다시는 하기 어려운 공연이라면 아카이빙은 필수!

2016년은 역시 작업실을 제대로 마련했다는 것이 큰 의미이다. 어디이든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이 지역과 장소에서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2017년도 역시 도전자의 위치이겠지만, 더 영리하게 궁리하고, 클라이언트를 만나야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