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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전시를 끝내고, 전시장에서 돌아온 짐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2018년을 마무리한 것으로 느낄 수 있어 이제야 회고를 한다. 그 어느때 보다 성공적인 한해를 보냈다. 세웠던 거의 모든 목표들을 모두 이뤄냈다.

스튜디오 플랫플래그 ★★★★★
2018년초에 계획했던 연간 매출액을 9월에 이미 달성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에게는 4대보험을 들어줬고, 2년차 디자이너로서 업계 최고수준 대우라고 자부할만한 급여와 복리 후생을 제공했다.

브랜딩 디자인 업무 ★★★★★
대부분의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 다. 다만 한 클라이언트와는 트러블이 있었다. 지구상에 있을 수 없는 결과물을 기대하는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가 문제였다.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그 기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서 초반에 잘라내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중간에 과감하게 일을 거부해야겠다. 브랜딩 디자인 업무에서 확장하여 인테리어를 직접 콘트롤한 업무가 하나 있었다. 마무리 과정에서 추가비용이 들어 힘들었다. 앞으로 인테리어 컨셉까지만 관여하고 집행은 타업체에 넘기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겠고, 직접 콘트롤하는 경우에는 클라이언트가 추가 견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조건을 제시하고 계약해야겠다.

캐릭터 디자인/ 스티커 개발 ★★★★
그림을 잘 그리는 지인 디자이너가 실직을 하여, 파트타임으로 고용하여 캐릭터 제작과 스티커  작업을 진행하였다. 흥미로운 스토리 위에 캐릭터와 브랜딩을 결합하여 누가 봐도 탁월한 작업을 만들어 제출 했지만, 캐릭터 공모전 주최 측에서는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업계 상황을 알고 있다 보니, 부당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좋은 결과물을 손에 넣었기에 앞으로의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캐릭터 디자이너는 크게 실망하여 그 이후로 모티베이션을 잃었다. 카카오에 제출했던 스티커는 통과하지 못했다. 캐릭터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했고, 올드한 느낌의 라인처리가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정답은 없다. 스티커 담당부서 MD가 딱 보고 잘 팔릴 것 같다는 판단이 서야 하는데, 이는 종합적인 판단이라 MD에게 어느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는 부분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MD가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야 한다.

예술활동 ★★★★
3월에 롯데갤러리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BANG-N-YOM이라는 팀으로 2018년 11월 청량리점, 2019년 1월 잠실점에서 초대전을 개최했다. 모자람 없는 전시비용은 받아 안정적으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회를 받아 최선을 다했다. 10월부터 디자인회사로서의 광고를 중단하고 기존에 받은 일을 마무리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스케치업으로 도면을 작성하였고 회의를 통해 둘의 테마를 정하여 페인팅 신작을 전개하였다. YOMSNIL은 개인전을 몇번이나 한 작가지만, BANG-N-YOM은 신인작가인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끊어지기 전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작품활동을 이어가야겠다.

교육 ★★
공주대에서의 UI/UX 수업은 계획했던 것처럼 성공적 피드백을 얻지 못했다. 내가 워낙 유튜브로 배우는 것이 많다보니 유튜브를 활용하여 학습하는 방법 자체를 알려주었는데, 이것에 대한 강의 평가가 무척 좋지 않았다. 내가 최근 게임업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탓도 있었을 것이고, 업무에 밀려 수업에 대한 준비가 다소 부족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본 학과는 디자인전공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교육하는 것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강의한 3개 학기의 수업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의 리더로서 팀원을 대하는 방식과 비슷한 자세로 학생들을 대했다. 좋은 커리큘럼을 먼저 수립하고 학생 모두를 잘 보듬어 주어야 한다. 교육자로서 더욱 소양을 키우고 다양한 방법의 교육컨텐츠를 만들어 나가겠다.

프로젝트A ★★★
프로젝트A는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조아제약의 협찬으로 운영하는 장애아동 미술교육 프로그램이다. 특수교육은 물론 아동교육에 대한 경험도 없었던 나에게는 도전적인 과제였다. 나는 초보교육자로서 두려움이 컸고, 비교적 장애 정도가 적은 소녀를 멘티로 선발하였다. 5개월간 격주로 주말에 장애아동과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언제나 교육 전과 교육 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멘티의 사물 관찰 능력과 재현 능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썼다. 하지만, 멘티는 쉽게 포기하고 집중력이 짧았다.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왜 멘티가 쉽게 포기하는지를 알아냈다. 애를 따로 맡기기 힘든 환경 탓에 남동생도 함께 수업에 참여시켰는데, 멘티는 남동생이 형상을 더 잘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집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리반 선생과 헬렌켈러의 일화처럼 멘티를 고립시켜 집중력을 키우는 것은 흔한 사례인데, 나는 그런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연히 이는 운영진에서 더 신경써주면 좋았을텐데, 가끔 운영진과의 회식에 가보면 그런 교육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사실 운영진의 고민이 깊지 않음은 여러곳에서 드러났다. 도담도담이라는 장애아동 여름특강의 경우 2회 연결된 커리큘럼을 전달했음에도 이를 공지하지 않고 신청을 받아, 수업당일 급히 수업내용을 바꿔야했을 정도였다. 작가로서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습 ★★★
2018년 2월에는 Zbrush를, 9월에는 C4D를 토요일마다 5회씩 배웠다.  C4D는 디자이너와 함께 수강하였는데, 3D프로그램을 더 만져본 나보다 디자이너의 프로그램 습득/ 이해능력이 더욱 뛰어나 놀라기도 했다. 열심히 해야겠다! 다사다난했던 스케쥴에도 적극적으로 수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배운 뒤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바로 연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이어서 진행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대학원 ★★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의 스마트디자인 엔지니어링학과에서 파격적인 장학금 조건이 발표되어 지원하였다. 영어수업이나 디자인 방법론은 좋은 자극이 되었지만, 가장 집중하여야 하는 전공수업은 최악의 교수와 엉터리 커리큘럼이었다. 나도 강의를 해본 사람으로서 교육자에 대해 관대하게 마음을 가지려 하지만,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교수였다. 5일의 업무시간 중 4일을 빠지니, 회사의 업무진행에도 차질이 없지 않았다. 내가 대학원에서 하려고 했던 것은 이론 연구적인 태도를 습득하고 실제적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이었다. 자퇴를 결심했으니 이를 내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구축하여야겠다.

 
벌이는 괜찮았으나, 벌이에 비해 돈을 모으지 못했다. 이래서 적금이 필요한 것이로구나.

2019년 계획
– 3월부터 디자이너를 한명 더 고용하였다. 신입사원이 소외되지 않도록 함께 실력을 키워 좋은 팀웍을 만들겠다.
– 사람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스튜디오 매출이 필요하다. 국내 경제에 대한 많은 비관론에 대비해 일본시장 개척을 준비 중이다.
– 예술활동 10개 이상의 페인팅 작품을 만들고, 전시기획을 준비해놓겠다.
– 3D프로그램 활용하여 이미지, 조형물, 상품 만들기.
– 3000만원 모으기.
– 꾸준히 돈들여 PT를 하다보니;; 드디어 운동이 틀을 잡았다. 이제 드디어 王자를 만들 때가 된 것 같다.
– 카카오 스티커 제작

2017년은 신작 없이 작은 전시와 하나의 설치 퍼포먼스를 제작하고는, 줄 곧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브랜딩 디자인 외주 업무에 매달렸다. 2월달에 처음 클라이언트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근 10여년간 오랜 디자이너로서 일해왔지만, 디자이너로서 사업을 해본 적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일지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신경 쓴 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하루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디자이너와 나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공동 저자로 성장하였다. 이 협력을 통해 나는 이미지 제작자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 냈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을로서의 일이라서 피곤할 것 같은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때때로 클라이언트와의 부조화로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화와 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것이 연륜인가보다.

브랜딩 디자인은 하나의 브랜드에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형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위한 의미부여와 작문, 심벌 디자인,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 제작은 내가 하고 싶었던 예술행위와 꽤 유사하다.

직업이 주는 행복감
예를 들어 가수라는 직업을 떠올려보자. 가수라는 직업의 일상의 행복 요소를 구분지어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 25%, 무대에서 나에게 집중되는 관객의 시선 25%, 나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 25%, 부와 명예 25%. 가수를 만나면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행복감의 정도, 퍼센테이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예술활동의 기쁨은 무엇일까? 내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25%,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25%,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 25%, 글을 쓰는 행위 25%. 대략 이 정도이지 않을까?

나만의 것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 저자성
내가 고액연봉의 회사까지 그만두면서 예술을 하겠다고 했을때 가장 큰 이유는 저자성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NAVER나 NCsoft가 아니라 내가 한 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플랫플래그는 앞으로도 개성있는 디자인과 작품들을 만들 것이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지향할 것이다. 방지숙 디자이너는 나의 디자인적인 단점들을 정확히 짚어내어 교정시켜주고 있다. 그녀의 천재성에 일주일에도 두세번 씩은 놀란다. 그 파트너가 너무 잘나거나, 너무 못나도 저자성이라는 것을 함부로 나눌 수 없을 텐데, 나는 기꺼이 그녀와 나누고 있다. Yomsnil이 만드는 작품 이외에 Bang & Yom이라는 예술 작가 듀오로서의 작품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NAVER에 다니는 연봉 높은 남자 또는 유능한 동료로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뭣도 모른채 꿈꿨던 미래의 모습은 화가였다.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좋아서 화가라는 꿈을 꾸었고, 학교에 다니면서는 그림 잘그리는 친구로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즐겼다. 나는 반에 하나쯤 있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나의 결과물로 그렇게 사랑받는 방식이 나는 익숙하다. Pictoplasma Berlin의 추억은 어떠한가? 3~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박수를 받고, 뒷풀이에서는 서양인들이 사인을 요청해왔다. 한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큰 행복이다.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어렸을때는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상당히 즐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도 그 결과물을 즐기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이것 내가 만든거야’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이 좋다. 유년시절부터 회화와 조소작업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2013년부터는 얼굴이 그려진 도자기로 유명해졌고, 사랑받았다. 을지로3가 사거리에 커다랗게 나의 캐릭터 얼굴을 걸어놓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더 통용될 수 있다고해도 유니크하지 않은 심볼을 만드는 행위는 그 행복감이 적을 것 같다. 내것이든 내것이 아니든 구분이 안가는 것은 내가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글을 쓰는 행위
바쁘게 일을 만들어 살아가는 성격에 글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말년의 꿈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글로서는 커다란 100m 조형물을 세울 수도 1000명이 등장하는 화려한 쇼 무대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문자는 그림과 다른 방식으로 가슴(두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브랜딩 디자인의 유사성
자, 브랜딩은 어떠한가? 브랜딩 디자인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의해서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저작은 엄연히 스튜디오 플랫플래그의 작업 결과물로서 홈페이지에 디자인을 올려 전시하고 있다. (나만의 것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저자성) 작년부터 디자인을 시작하여 현재 지속적으로 일을 주고 있는 두 업체가 있다. 우리의 디자인 작업은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브랜딩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 아직 고정 클라이언트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일을 끝맺을 때 클라이언트의 좋은 반응이나,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의뢰를 받을 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브랜딩 디자인은 심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워드마크도 물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만, 심벌을 만드는 행위에서 더욱 우리의 개성을 드러낸다. (고유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정립하고, 때로는 네이밍에 참여하면서 스토리텔링을 글로 풀어낸다. 이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업무내용이다. 물론 이것도 클라이언트에게 만족감을 주고 수월하게 채택이 될 때 기쁨이 배가된다. (글을 쓰는 행위)

그래서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고, 아티스트로서도 지속가능성을 획득했다. 2018년은 안정된 클라이언트 작업을 바탕으로 다시 예술의 영역을 강화할 예정이다.

2018년 계획
– 올해 디자이너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4대보험도 들어줬다. 세무사에게 세무업무를 위탁하였다. 하나의 회사로서 더욱 형식미를 갖춰나가자.
– 브랜딩 디자인 스튜디오 2년차를 맞아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더 큰 매출을 기록하길 기대한다.
– 올해도 수업을 맡았다. 1학기는 창업 프로젝트와 게임 UI/UX 수업을 맡았다. 잘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
– Bang & Yom으로 비주얼 아트 작품을 제작할 것이다.
– Yomsnil로서는 조아제약 후원의 프로젝트A를 통해 멘토로 활약하며 전시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좋은 교감과 자극이 될 것 같다. 신작의 아이디어는 아직 잡아두지 않았다.
– 카카오톡 스티커를 개발하고 싶다. 새로운 캐쉬카우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 2019년 카페 오픈을 위해 돈을 모을 것이다. 기회가 오는 순간,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나잇살에 더해, 2017년엔 일에 열중하느라 식단관리에 소홀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고 있는데도 체중이 점차 증가했던 점을 반성. 올해는 보다 좋은 몸매, 건강한 육체를 가꾸어야겠다.
– 올해 Zbrush, Cinema4D, Fusion360, Sketchup을 꾸준히 더 연마할 것이다.

아무쪼록 2018년 연말에 더 큰 영광과 보람에 웃음지을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다.

(매거진 충무로에 실린 원고입니다.)

작업실의 위치와 작업실에서 만난 사람들로 나의 삶을 돌아본다.

2010년도에는 최신 기술이 집약된 일본의 고층빌딩에서 IT기업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비교적 높은 급여와 부러워할만한 복지를 보장받았지만, 나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담고 번민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일부가 아닌 나, 그 자체로서 세상에 기억되고 싶었다. 결국 6년간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듯 작가에겐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문래동, 성산동, 다시 문래동, 이태원을 거쳐 현재 을지로3가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13년에 다시 돌아온 문래동 공동작업실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즈음 도자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건축과 출신의 작업실 메이트에게 목공을 배웠다. 주변의 소공인들과 친목을 바탕으로 금속을 이용한 오브제도 손쉽게 제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작품을 바탕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전시까지 초대받게 되었다. 문래예술공장의 예술지원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메이드인문래>라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도 제작할 수 있었다. 문래동에서 1년 반을 지내고, 적절한 시기에 이태원의 예술공간의 매니저를 맡으며 작업공간을 얻어쓰게 되었다.  문래동이 생산지였다면 이태원은 소비지였다. 엣지있는 숍들과 개성있는 맛집들이 즐비했고, 패셔너블한 감각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안 되어 경영악화로 운영을 멈추면서 나는 급하게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을지로3가의 어느 공동작업실의 문을 두드렸다. 을지로3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공동작업실에 짐을 옮겨 넣고 곧바로 독일전시 준비로 출발해야 했다. 다시 돌아와 나는 을지로의 편의성을 실감했다. 7개월간 공동작업실을 오가며 인근의 공실이었던 지금의 사무실을 발견하여 2016년 1월부터 임대하여 쓰고 있다.

을지로의 매력은 시내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생산지라는 점이다. 다양한 재료들을 걸어가서 살 수 있다. 문래동처럼 철공소도 있고, 조명가게들도 있고, 지류를 살 수 있는 방산시장도 가깝고, 옷감을 살 수 있는 동대문 종합시장도 자전거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을지로3가 사거리에는 유리가게와 볼트집이 있고, 청계천 쪽으로는 각종 장비 도소매점, 을지로4가에는 목재상들이 있어,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바로 무언가를 만들기에 편리하다. 타카와 콤프레셔 등의 목공장비도 구매하여 직접 나무로 인테리어 시공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실의 책장, 창고, 선반, 소파, 테이블 등 거의 모든 것이 각목과 합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세운상가에서 스피커 전선 등도 길이에 맞춰 재단하여 좀 더 도전적으로 스피커를 배치할 수도 있었다. 교통이 좋아 클라이언트를 불러 내부에서 미팅을 잡기도 좋다.

을지로의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통이 편리한 서울의 중심이면서도 월세는 면적에 비해 비싸지 않은 편이다. 내가 입주한 이 빌딩도 60년대에 지은 건물로, 입주하면서 화장실을 서양식으로 교체했고, 300만 원을 들여 바닥을 새로 고쳤다. 이러한 매력으로 을지로 일대에 아티스트들이나 작업자들이 계속 모이고 있나 보다.

내가 자리 잡은 이곳은 아크릴 집이 있었던 자리였고, 사거리의 모서리 자리이다 보니 커다란 간판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부동산에 전화하여 공실임을 확인하고 임대를 결정하면서 커다란 간판을 어떻게 꾸밀까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하였다. 고민하면서 커다란 빌보드를 하나의 납작한 깃발로 보고, 스튜디오 이름을 플랫플래그 (Flat Flag)라고 붙였다. 사다리차를 불러야 해서 총 60만원의 비용이 들었고, 간판 사이즈를 잰다고 쟀는데, 실제로 붙여보니 모자라서 시트를 더 사다가 붙이고, 차량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제지를 받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간판은 혼잡한 글자 간판 사이에서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로 눈에 잘 띄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간판을 기억해주고 있다.

사람은 당연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의 팀 분위기, 동료와의 하모니가 삶의 만족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작가에게는 작업실의 동료들과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3년의 문래동 작업실 동료들은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역할이 되어주었다. 이태원에서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접객이나 공간 운영의 노하우를 익혔고,  당시 공간의 특이한 지분체계로 인간관계와 계약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2014년에 처음 사용했던 을지로의 공동 작업실은 동료작가들이 자주 나오지 않던 탓에 거의 혼자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새로 작업실을 구하기 시작했던 것은 작업실을 통해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작업실 동료와 시너지를 내며 한 발짝 더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모자 디자이너에게 함께 작업실을 운영할 것을 제의했다. 공동의 거실을 쓰고 각자의 작업공간을 갖는 형식이었는데, 같이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클라이언트와의 의견 차이로 엎어지면서 나와 동료디자이너는 공간을 공유할 뿐, 공통분모가 상당히 없어지고 말았다. 동료디자이너가 짐을 빼자,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동료 디자이너가 나가고 두 달 뒤, 나는 대만에 3개월간 초청레지던시를 다녀왔고, 2016년 12월에 새로운 작품 제작을 의뢰받아  나는 새로운 어시스턴트를 고용했다. 근데 계약금까지 받은 새로운 작품 제작도 클라이언트의 사정으로 또다시 취소되고 말았다. 해외에서 초청을 받고, 종종 패션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고 해서 간단히 생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 둬야 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둘의 클라이언트의 결정에 내 삶이 휘청거리는 것이 짜증이 났다. 금전적으로 해결책이 필요했던 나는 손 놓았던 디자인 작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때마침 합류했던 어시스턴트가 유능한 디자이너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업실을 아트앤디자인 스튜디오로써 다시 한번 새롭게 탈바꿈시켰고, 홈페이지도 리뉴얼하였다. 새롭게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하다 보니 아직은 저렴하게 디자인을 만들어 주면서 다양한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받고 있다. 디자이너와 함께 9개월을 작업하며 스튜디오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구축하였고, 이제 스튜디오의 미래 모습을 함께 꿈꾸기에 이르렀다.

준비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로 2013년에 그럴싸한 개인전을 처음으로 열고 나름 4년을 작가라고 불리며 시간을 보냈는데도, 스스로 생계의 사이클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나의 인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 거친 세상에 홀로 선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 각 부서가 역할을 달리하는 대기업을 다니다 보니 몰랐었는데, 이제 홈택스로 전자세금계산서도 발행할 줄도 알고, 세무사도 쓸 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실은 내가 하나의 경제인으로서 우뚝 선 기념비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다.

www.studioflatflag.com
서울시 중구 충무로 55-1 3층

월/화/수/금 10AM~5PM OPEN

 

2016년은 글을 전혀 못썼다. 1월 작업실을 오픈하고는 여유시간마다 작업실의 환경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중독성 강한 취미다. 그래도 한해가 저무는 마당에 2016년을 회고하고 정리해 두겠다.

을지로3가, 스튜디오 플랫플래그
나는 2015년 이태원을 나와서 을지로3가의 공동 작업실을 7개월간 사용했다. 을지로3가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을지로의 작업편의성과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고, 오며가며 봤던 좋은 자리를 계약했다. 패션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함께 시작했지만, 서로가 생각했던 것들이 달랐음을 깨닫고 그가 떠나, 5월부터 1인 체재로 운영하고 있다. 좋아하는 목공, 페인팅, 컴퓨터 작업에 적당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므로 이제는 수익창출을 하여야.

어시스턴트
2016년에는 총 5명의 어시스턴트와 함께 했다. 국민대 실내디자인과 3학년 A, 같은과 4학년 B, 사진리터칭을 잘했던 C,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D, E , 패션디자인과 F, 현재 같이 일하고 G까지. A는 센스도 있는 편이고, 작업실 초기에 시설구축에 많은 일을 함께 했지만, 5개월째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하지 않은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아직 미성숙한 모습이었다. B는 내가 부족한 3D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차분한 성격에 많은 가능성이 있었지만, 6개월을 함께 일하고 취업을 했다. 내가 더 많은 급료를 줄 수 있고, 경험을 열어 줄 수 있었다면 잡았을 것 같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던 C는 기술을 성숙시킬 시간이 모자랐다. D는 본질을 흐리는 커뮤니케이션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이 없어 책상은 본드와 칼자국이 늘었다. E도 시간이 모자랐던 편이다. 저학년이다보니 컴퓨터 스킬도 부족했다.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스러웠다. F 역시도 컴퓨터 스킬이 부족했고, 무단결근과 정직하지 않은 면을 보이기도 했다. 12월에 시작하여 3주를 함께 보내본 G는 일단 여러면에서 만족스럽다. 나는 컴퓨터와 인쇄 스킬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고, 내가 G에게서 모르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G의 감각을 키우려고 미술관에 데려가고 있고, G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일거리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G는 충분치 않은 급료에 동의해주었고, 나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배려해주고 있다. 2D에 관해서는 기존의 어시스턴트에 비하여 높은 수준이고, 적극저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철학과 비젼을 공유하며 G의 합류를 계기로 미니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모두가 고마운 인연이지만, 맞는 시기와 상태가 있다. 재미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거듭나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거칠게 사람을 평가하는 듯 하지만, 그들과 나의 교감과 대응을 기억하기 위해 적어둔다.

G창업프로젝트
윤대표의 소개로 4월부터 10월달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를 위한 금전적인 지원이 있었고, 창업스쿨을 통해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필요한 공부를 했다. 나 스스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맞춤형 창업지원은 협약기간이 일주일 정도 겹치는 바람에 1차 합격 후 면접이 취소되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짐작케 했다. G창업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상품을 디벨롭시킬 수 있었고, 보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고 있다. 2017년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정부사업에 지원해야겠다.

Folio Daan Hotel Artist Residence program
생애 첫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치렀다. 특별히 응모와 심사 절차 없이 아키노리 오이시 작가의 소개로 직접 초대되었다. 전시를 기획하였으므로 5월부터 메일을 주고 받기 시작하여  타이페이에서의 생활과 전시는 올해의 가장 큰 이슈였다. 다른 레지던시에 비하여 푸본 아트파운데이션은 많은 것을 준비해줬지만, 첫 해외레지던시 경험이어서 그런지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레지던시라는 사업이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호텔에서 세달이라는 장기투숙자의 삶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아키노리 오이시 작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에 들어간 수도승의 기분이었다. (그런 고독과 독백의 시간 속에서도 집필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는 현지에서 제작하기 버거운 컨셉의 전시를 기획했고, 한국을 오가면서 끝내 기획대로 전시를 이루어냈다. 기대치에 비하여 전시의 퀄리티는 80%, 현지의 반응은 60%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집객이 어려운 갤러리였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아무튼 2016년의 1/4을 투자했던 것 만큼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대만의 커넥션을 계속 활용할 수 있어야 겠다.

서울오케스트라 협연  – 예술인 파견
많이 준비했고, 소정의 공연비도 지급되었고, 내 돈도 많이 썼다. 아쉬운 점은 남았다. 완벽한 드레스리허설이 필요했다. 완벽한 드레스 리허설을 통해 카메라 촛점도 맞췄어야 했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어느 이벤트이던 아카이빙이 필요하고 30만원의 별도 예산을 준비해두자. 특히 다시는 하기 어려운 공연이라면 아카이빙은 필수!

2016년은 역시 작업실을 제대로 마련했다는 것이 큰 의미이다. 어디이든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이 지역과 장소에서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2017년도 역시 도전자의 위치이겠지만, 더 영리하게 궁리하고, 클라이언트를 만나야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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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한국관 전시도록이 나왔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제 작업을 소개해주고, 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이드인 문래가 제작되도록 기회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함께 작업했던 작가분들, 퍼포머, 소공인 여러분들에게 소박한 영광을 나눕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팹랩, ‘제작을 위한 제작기계 워크샵’에서 좋은 이슈를 가지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만났다. 사실 짧은 시간의 워크샵, 제작활동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었고, 각 작업자들의 작업방식과 태도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 이번 워크샵을 통해 영향 받은 것, 깨달은 것들을 메모해둔다.

1. 워크샵 개설
아트팹랩을 애용하는 작가로서, 연구관이 나에게도 워크샵 개설에 대해 간략하게 제안해주었다. 자신이 행하는 일을 교육과 체험으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값진 일이다.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면서 내 예술이론을 다시 정립할 수 있었던 것처럼, 워크샵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공공화함으로서 나의 예술활동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테마로 워크샵을 만들 수 있을까?

-저자되기 워크샵
-사물을 캐릭터화하기
-아티스트의 셀프브랜딩

경험해보니 준비하면 기회가 온다. 강의와 워크샵 커리큘럼도 만들어 놓자.

2. 기술 축적의 삶
남이 배우고 싶은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훌륭한 매력이다. 예술의 구성요소라면 내용과 형식이 있겠는데, 형식을 통해 아우라를 구축하여, 작품을 판매하고 그 기술을 다시 교육하는 것으로 또 다른 생계의 해결을 이룰 수 있다.  나는 배움에 늘 적극적이었고, 전반적인 브랜딩, 아트디렉팅 능력과 디자인 툴 운용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목공 및 공사 능력을 보탰다. 나의 기술성향은 얕고 넓은 편이다. 도시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하니까,  당연히 심도깊은 기술능력이 돈을 잘 버는 지름길이겠다.  하지만, 나의 성향이 이런 것을 어쩌겠나? 작은 기술이라도 체계화해서 만물박사의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자. 책도 만들 줄 알고, 목공도 할 줄 알고, 브랜딩도 할 줄 아니까, DIY 제작 책 하나 쯤은 낼 수 있을게다. 그저 생활인으로 떠다니지 말고 예술가로서의 삶의 깊이를 만들어 가자.

3. 이슈
레퍼런스가 풍부한 작품은 그 만큼 이야기를 품고 즐기게 만들어 준다. (책이 그러하듯이) 사회와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현대 예술작품의 기능이다. 나의 이슈는 현재 도시- 군집- 저자성에 머무르고 있는데, 매우 초등적인 상태의 이슈다. 이 이슈들에 깊이를 만들어야겠다.  유니코드, 오스카슐레머라는 선배를 나의 이슈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모든 것을 적당히 하고 도망치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을 아우르며 발전하고 있는지 반성해야할 때이다. 메이드인문래(현대미술)-하피(캐릭터)-브랜딩(디자인)이라는 세가지 요소. 다시 생각해고 정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