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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msnil's 2015

YOMSNIL’s 2015

올 하반기는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전반기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와 픽토플라즈마 베를린에 관해서는 시간을 두고 의미있는 회고록을 작성해두었다. 하지만 하반기의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생각만큼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고, 광고회사에서 짧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긴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회고록을 꼭 작성하는 편인데, 타인의 잘못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알랭드보통 특별전
내가 콘트롤할 수 없었던 상황을 차치하고, 나의 실수만을 회고하자.

1. 사이즈
전시의 사이즈를 너무 키웠다. 전시 지원금을 십분 활용해서 공예다운 알찬 작업을 할 수도 있었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시된 커다란 벽을 보고는 작품 사이즈를 엄청 키워버렸다. 픽토플라즈마 베를린 전시를 진행하면서 제작한 Face Composition 시리즈에 스스로 만족감을 가진 것이 더 큰 이유였겠지만, 최종적인 벽의 높이를 알았다면 작품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작품 시리즈를 낳았기 때문에 작품 시리즈에 대해서는 총체적으로 만족감이 크다.

2. 작품의 설치
위험한 상태로 작품을 설치를 했다. 무거운 나무작품을 삼각대 위에 올려놨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옮기다가 작품이 떨어져 이마를 찌었다. 관객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후관계와 책임소재를 막론하고,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이다. 폭넓은 관객층이 방문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아찔한 실수였다.

3. 지방 전시에 대한 대처
가평 이후, 지속적으로 들러보기 힘든 거리에서의 전시는 처음이었다. 1박2일간 설치를 하고 오프닝 당일 아침에 또 설치를 했지만 완성도가 부족했다.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관리해야 하는 환경 구성 전시는 완벽한 사전 설치와 메인터넌스에 대한 가이드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확보해 두어야겠다.

4. 에너지의 관리
작품 제작 아카이브에서 그들이 원했던 양식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더 좋은 스케치 작품이 많았음에도 볼품없는 A3용지 한 장을 건냈을 뿐이었다. 기획자와의 트러블로 사기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공개되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이름이다. 확실히 나를 보여주는 모든 결과물은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렸어야 했다.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봐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공예비엔날레에서 작품봤다는 사람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창피하던지… 작가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다져야할 순간이었다.

공원 조형물 의뢰
<사물학2: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를 관람했던 조경회사 대표로부터 수원의 한 공원을 위한 조형물 제작의뢰를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탈락했지만 조형물의 의뢰를 받아 본 것은 나름 흥미로운 지속가능성의 발견이었다.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좋은 기획서를 만들지 못했다. 조형물, 회화, 프로젝트와 같이 각각의 포트폴리오를 미리 준비해두고, 다음에 이와 같은 건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미팅을 주도해야겠다.

슈퍼콤마비 2016 S/S 콜라보레이션
브랜드에서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때는 예술기획사이나 광고기획사를 끼고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슈퍼콤마비 마켓팅팀이 프로젝트를 직접 콘트롤 하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예술기획자이자 예술가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마켓팅 담당자를 도와 2016년 전반기에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엘로퀀스 매거진에서의 프로젝트 기획이나, 올해 일했던 예술광고기획 회사에서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키워 더 큰 부가가치를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하고, 더 많은 금액을 받아내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태도이다.

평창올림픽 그래픽모티브 전시
유수의 그래픽디자이너들과 함께 한 자리로서 참여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전시였다. 밀도를 더 높일 수도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다소 남는다. 아트를 흠뻑 즐기고 다시 돌아와선 그래픽 디자인! 더 부지런히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안국약품 갤러리AG 전시
12월에 찾아온 행운이다. 샐리에게 소개받아 함께 2인전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년간의 예술 프로젝트 경험을 살려 샐리와 깊게 대화나누며 전시의 톤을 상의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남았던 아쉬움과 새로운 발견들을 다시 정리하여 샐리의 항기와 함게 유감없이 펼쳐보일 수 있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70%를 보여줬다면, 갤러리AG에서 100%를 다 이끌어낸 셈이다. 갤러리AG의 큐레이터는 나의 모든 시도를 가능하게 허락해주었다. 매주 전시가 바뀌는 컨셉에서부터 심지어 케이터링을 직접 만드는 모험까지도! ^^ 나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갤러리를 자주 방문하며 나 스스로가 전시를 즐겼고, 전시장의 환경을 챙길 수 있었다. 늘 관객들에게 최선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챙기니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하고 방문을 기다릴 수 있었다. 오프닝에서 음식준비에 내가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것은 잘못이다. 나는 더 많은 관객들을 맞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인맥을 넓혔어야 했다. 물론 칵테일을 만들어서 부어주며 모두와 인사할 수 있었지만, 너무 바빴다. 이목구비를 보여주는 전시의 컨셉은 제약회사의 특성과도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콤프레셔, 타카, 각도절단기를 완비하였다. 이제 모든 목공설치를 스스로 할 수 있다. 목수를 적절히 활용해야겠지만,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올해는 순수하게 작품 판매로 국내외에서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만들었다. 아직 태부족하지만, 2016년에는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실을 거점 삼아 스스로 경제구조도 만들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을 더욱 많이 만들어야겠다.

2015년을 돌아보면 부동산 분쟁도 옆에서 지켜봤고, 나 답지 않게 분노를 못이겨 유리병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ㅎㅎㅎ 세상에. 2015년 초에 이태원을 떠나고 독일에 다녀오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상당히 분절된 느낌이다. 2016년을 여는 지금은 평화롭고, 희망적이다. 돈이 있으면 내 꿈을 위해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남의 꿈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현실이다. 내 꿈을 위해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궁색하게 살자. 현실을 고민하고 더욱 진실하게 살아보자.

(요약)
1. 얼굴을 보는 것을 즐긴다.
2. 얼굴에는 다양한 감각기관이 몰려있어서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개체구분의 기능을 가진다.
3. 감각기관, 소화기관이 연결되어 있는 접점은 개인에 대한 정보를 드러내는 창으로 기능한다.

그라비아 아이돌을 고르는 제 1의 조건은 얼굴이다. 수많은 패키지 중에서 커버 이미지에 등장하는 얼굴을 보고, 마음에 드는 모델의 작품을 골라 다운로드하여 그 존재의  몸뚱아리를 감상한다. 그와 반대로 몸을 먼저 보고 얼굴을 찾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호불호를  결정해버린다. 외모로 섣불리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되려 위험한 일이지만, 외모에서부터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인간사회는 호불호를 넘어서 관상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의 얼굴로부터 그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사람의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사실 관상학은 꽤 의미있는 통계학이다. 개의 얼굴을 떠올려보라. 세퍼드의 얼굴은 강인하고, 충직한 표정을 하고 있고, 말티즈는 순하고 애교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을 통해 그 견종의 성향이 그러함을 알고 있다. 이는 경험을 통한 인지인가? 직관인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진화한 우리의 직관이 작용하는 것이다. (교육하지 않은 아이도 견종에 따라 긴장도가 다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들의 최소한의 성격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성격을 바탕으로 미레에 생길 삶의 해프닝들을 관상이라는 이름으로 예견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머리는 중요한 부위다. 팔이 하나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머리가 없다면 살 수가 없다. 머리에는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는 인지기관과 먹고 마시는 소화기관, 산소를 취하고 이산화탄소를 버리는 호흡기관의 출입구가 배치되어 있다. 또 뇌라는 중요한 사고 기관이 있고 그에 부속한 달팽이관이라는 평형기관이 있다. 눈코입이 배치되어 있는 머리의 전면부를 우리는 얼굴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기관의 조합이 모여있다보니 얼굴은 복잡한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 복잡한 정도는 개체를 구별할 수 있는 정도여서 사람들은 얼굴로 그 개체를 특정한다. 여권의 증명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얼굴은 개체를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개체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얼굴을 통해서 표정이라는 감정정보와 건강정보를 읽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감각기관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얼굴은 희노애락을 드러난다. 얼굴을 통해 현재의 기분을 나타내고 우리는 그것을 표정이라고 부른다. 이 역시 얼굴에 복잡한 기관들이 몰려있는 만큼 다양한 방향의 근육들이 얼굴에 발달되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개체의 안전을 위해서 웃는 얼굴을 보면 관찰자도 안심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고 상대방이 공격적이거나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 관찰자 역시 불안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사람이 자주 짖는 표정은 얼굴근육을 단련시켜 기본적인 얼굴상이 되고, 주름이 된다.

몸 속의 기관에 연결된 출입구들- 코, 입, 귀의 냄새와 맛을 통해 그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이 역시 상대방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된다. 눈은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감각기관이다. 물론 신경에의해 모든 피부가뇌에 연결되어 있지만, 눈은 그 신경다발이 밀집하여 극대화되어 있는 부위다. 뇌는 사고작용이 일어나는 부위로서, 사람에게 흔히 일컬어지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눈을 똑바로 서로 마주본다는 것은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행위와도 같다.

이렇게 얼굴을 바라보는 행위는 특별하다.
그래서 초상화는 미술역사상 중요한 소재로 반복되어 오는 것이고, 나 또한 얼굴이라는 주제를 좋아하는 것일게다.

adam nathaniel furman adam nathaniel furman adam nathaniel furman adam nathaniel furman

http://adamnathanielfurman.com/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먼저 시작한 작가들도 있으니, 영감은 주고 받되 비슷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도치 않게 표절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계속 차이점을 만들어 가야.

1) 인류에게 있어 예술이란

예술(藝術)이란?
[명사]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설명이 충분치 않다. 예술은 누군가가 싸놓은 똥이다. 그 결과물이나 행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샆어한다면, 그것은 예술로 기억되고, 기록된다.

그 큰 예술이란 장르 속의 미술(美術)이란?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그림ㆍ조각ㆍ건축ㆍ공예ㆍ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ㆍ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 근데 오늘날 현대미술에 이르러 그것이 깨졌다. 아름다움(美)이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예술의 핵심적인 효용
기억의 교정,
희망의 조달자,
슬픔을 존엄화하는 원천,
삶의 발란스,
자기 이해로 이끄는 길잡이,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감각을 깨우는 도구.
by Alain De Botton

2) 역사 속의 예술
인류의 기원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으로 그리고, 신대륙으로 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35000년전에 네안데르타인이 살고 있던 스페인 북부에 현생인류가 도착했다. 3만~1만년전 정도까지 인류는 구석기시대의 다양한 유적을 남긴다.

원시시대의 예술
동굴벽화도 그 중에 하나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18000년전의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렵채집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일기처럼 수렵과정을 복기하는 의미에서 그려넣었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은 그것을 보며 선조의 생활상을 익히거나 풍요를 기원했을 수도 있다. 조형행위와 후대에게 목격되는 것. 이것이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농업혁명
농업혁명은 계급을 만들어냈다. 정치인과 전문군대가 양성되었으며, 그리고 공예인과 예술인이라는 특화된 직업인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농경시대 이후의 계급이 생겨난 사회와 문화는 그 이전과 크게 다른 양상이다. 예술 역시 그 변화 중 하나다.

그리스 시대의 예술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의 다양한 신상들을 보라. 고대인들은 아름다운 신상을 짓기 위해 얼마나 기술적으로 수련을 했겠는가? 다양한 신상들은 그 당시에는 대단한 엔터테인먼트 컨텐츠의 캐릭터들이었다. 최근 그리스신상들에서 색소를 발견하고, 원래는색깔이 덮혀 있었다는 연구는 놀랍다.
(http://io9.com/5616498/ultraviolet-light-reveals-how-ancient-greek-statues-really-looked)

중세 유럽 기독교 시대의 예술
재미있는 시기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을 믿고 있었고, 모든 것은 신을 위해 존재하여야만 했다. 신상의 파괴를 요구했고, 도상을 금지시켰다. 카톨릭 교회는 고딕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이용하여 숭고미를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종교화만이 그려질 수 있었다. 보쉬의 그림이나 성당 귀퉁이에 조각된 악마조형물들을 보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인간군상들을 표현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억눌린 표현욕구를 분출시킨 단편이 아닌가 싶다.

르네상스시대의 예술
신을 물리쳤다. 표현 대상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졌다. 그리스로마신화가 인간의 다양한 감정표현과 드라마에 빗대어 다시 그려졌고, 실제 주변의 이야기들과 왕족, 귀족의 초상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진의 발명
1816년 니엡스가 최초로 사진을 발명했다. 사진이 보급되자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 초상화가와 풍경화가들 (시뮬라르크 화가들)은 실직위기에 놓였다. 그 때부터 화가들은 다양한 붓놀림과 터치로 사진과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의 최초의 그룹은 인상주의라고 불리웠다.

인상주의 화가들
+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다다이즘
마르셀 뒤샹 도상들 소개

3) 팝아트 연대기
그리고 드디어 팝아트도 등장한다. 대량소비사회가 쏟아내는 물질들은 충격이었다. 그것을 비판하거나, 찬양하거나, 그저 바라본다. 물질 소비문명을 주제로 한 예술의 모든 것이 팝아트다.

리처드해밀턴
앤디워홀
로이리히텐슈타인
키쓰헤어링
장미쉘바스키아
제스퍼존스
클래스올덴버그

네오팝아트
워낙 강렬했던 팝아트 작품들. 세월이 지나 팝아트의 내용적인 측면은 일상이 되었다. 더 이상 그것을 소재로 삼는 것은 진부하다. 하지만 형식적인 측면의 유사성을 지닌 작품들을 사람들은 네오팝아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pop art를 구글링해보라. 오직 스타일만이 pop art로 지칭된다.

제프쿤스
무라카미타카시
커스 kaws
나라요시토모
쿠사마 야요이

한국의 팝아트
K팝아트라고 부르면 될까? 네오팝아트와 같이 한국에서도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면에서 팝아트라는 구분을 쉽게 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칭하기보다는 불리운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팝아티스트가 되길 원하고, 팝아티스트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한다.

이동기
찰스장
마리킴
임지빈
더잭

Design based Artists
팝아트라고 할 순 없지만 소개하고 싶은 디자인 베이스드 아티스트들

추미림
염승일
이에스더
함영훈

Rising Artists
미디어아트 소개와 앞으로 기대되는 작가들, 새로운 경향들

THANK YOU

TheFaithInstinct

요약
종교란 태초 때부터 인류가 가진 근원적 태도이다. 선사시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기원을 바탕으로 삶의 방식을 교육하는 것. 그 자체가 종교인 것이다. 작은 사회는 종교를 통해 사회안정을 만든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 이기적인 구성원은 신에 의해 벌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 직접 벌을 집행하다보면 구성원 간 원한이 만들어질 수 있고, 집단 안의 위험은 증가한다.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종교 아래서  신의 집행을 기다리는 것이 더욱 현명할 수 있다.

집단선택의 관점에서 종교를 가진 집단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집단보다 더욱 우월한 생존력을 가진다. 수렵채집 시대를 떠올려보면, 반복되는 종교 의례와 단체무를 통해 팀워크를 기르고 다른 종족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없애는 교육을 한 부족이 그렇지 않은 부족보다 더 좋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종교를 가진 종족이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일족을 살해하고 그 땅을 점령한다면 종교에 순응하는 사람(유전자)들이 세상에 더 많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농경시대의 종교는 태양을 섬기며 계절을 관찰한다.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축일로서 기억하는 것이다.

중동 가나안  지역의 농경문화 종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대교는 기독교, 이슬람교와 함께 3대 유일신 사상이라 일컬어지고 동시에 그것들의 뿌리이기도 하다. 성경은 다양한 저자와 출처가 불분명한 저자들의 글을 짜집기한 것인데, 역사적 증거에 반하는 기록들이 많다. 이스라엘인은 모세의 이집트 탈출 없이 가나안 땅에 계속 살고 있었으리란 추측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따온 이야기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유대교가 일신교로서 강력한 매력이 있었지만, 민족 종교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종교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이 기독교였다. 유대의 구약성서를 받아들이면서 예수라는 인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파생 종교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이슬람교라는 파생종교를 만든다. 지역과 변화된 사회 양상에 맞게 나뭇가지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새로운 종교로 분화되고 파생된 것이다.

종교는 특정한 행동양식과 옷차림 혹은 금전 또는 노동력, 때로는 인내를 요구한다. 그것은 새로운 신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된다. 하지만 이것을 감내하고 나면 그들은 서로에게 특혜를 준다. 관심을 쏟아주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다. 물물교환과 경제활동의 선결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없다면 혜택만 받고 도망치는 이기적인 무임승차자들을 걸러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포교를 강요하면서 동시에 어려운 진입장벽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국가의 발달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었고, 다시 과학의 발달로 종교는 더욱 약화하고 있다. 생활의 안정감이 없는 남미에서는 종교가 번성하고, 국가의 복지제도로 삶에 안정성이 높은 북구유럽은 종교의존도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대국 미국은 특별한 사례다. 자유시장의 선두주자답게 미국은 종교 마저도 브랜드화되어 다양한 기독교가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종교가 약화되는 추세를 감지할 수 없다. 대통령선서에는 “신이여 저를 도우소서”라는 구절이 있고, 지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종파가 무엇이 되었든 피창조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청교도들의 이민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시민종교를 바탕으로 한 메타종교적인 속성이 있다. 성서의 글귀처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공동의 가치를 펼치는 명연설들이 상징화되어 있는 것이 그런 요소이다.

감상
오늘날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테러를 접하면서 나는 종교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와 종교는 때려야 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은 외롭기에 친구를 만들고, 일정한 숫자를 넘어선 조직은 내부적으로 다시 분열된다. 결국 집단과 그룹이 할 일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엉터리 이야기를 믿는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종교가 없는 나는 트랜스상태와 숭고미를 어디서 찾고 있는가? 나의 작업에서 그런 종교적인 위안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을까?

2014.10~2015.1

지난해 새로운 작업실을 알아보던 참에 일전에 전시를 했던 갤러리 오너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새로운 아티스트 임대공간을 만들고, 갤러리 겸 카페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2년간의 전업아티스트 생활로 경제적 압박이 있었던 터라, 나는 그들의 SNS홍보와 작업실 관리를 조건으로 그들의 공간에 입주하기로 하였다. 아티스트로서 제작 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공간 구성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9월 작업실이 완성되고 제일 먼저 이사를 했다. 입주를 하고 났더니 갤러리와 카페 쪽의 업무 진행이 지지부진하여 페이스북에 업로드할만한 컨텐츠조차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업무 방식에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내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제의했다. 그렇게 스페이스한남에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업무를 시작했다.

나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스페이스한남의 영업이익 개선을 위한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 대표와 1명의 디자이너, 2명의 사무직원과 함께 일했다.

1. 청소
이틀에 한번은 스태프들과 공간을 청소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미화원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작은 회사들은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유리를 닦았다. 에폭시로 코팅한 바닥은 물걸레질이 아닌 왁스걸레질이 적당했다. 스페이스한남은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곳으로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다. 잠깐 사이라도 손님이 나쁜 인상을 받지 않도록 화장실이던지, 계단이던지 쓰레기가 보이면 곧바로 치우도록 팀원들을 독려했다. 해결해야 할 독특한 건축적 문제도 있었다. 디자인웍스빌딩은 6층짜리 건물로 스페이스한남은 뒷쪽에서 올라오면 5층, 이태원로 쪽에서 보면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1층에는 레스토랑 2개 점포가 있고, 별도의 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곳에 일하는 종업원들은 스페이스한남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건물의 뒷마당으로 여기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곤 했다. 주차장이 있는 진정한 뒷마당은 계단으로 4개층을 내려가야만 하니 흡연자로서는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님이 우리 카페를 들어오려면 담배꽁초와 가래침으로 뒤범벅이 된 바닥을 지나와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매일 아침 관리인이 청소를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나는 위트있는 금연 표지판을 만들어 붙이고, 해당장소에서 흡연자를 만나면 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상습흡연자를 만나면 인상을 쓰며 혼내기도 했다. 관리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했다. 토요일, 일요일은 스페이스한남 매장 스텝이 청소를 하도록 정례화시켰다. 물론 나도 함께 참여했다. 건축적으로 영구적인 해법을 구상하기도 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실행할 수는 없었다. 완벽히 해결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관심을 쓰고서 많이 깨끗해졌다. 청소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행위다.

2.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네이버 시절과 웹사이트 운영 경력을 살려서 업체의 SEO를 개선하였다. 주요수입원이 공간대여였으므로 검색사이트에 ‘이태원’, ‘대여공간’, ‘파티’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될 수 있도록 태그와 본문을 작성하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기존의 신사 지점에 비해 검색 결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음을 증명해보였다. ‘공간상회’와 같은 공간 중계 사이트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구글맵에도 등록하고, 네이버 지도도 변경 등록했다. 공간은 숍인숍으로서 3개의 브랜드가 더 입점해있었다. 숍인숍으로 들어와있는 브랜드들의 평균 인지도가 훨씬 높은 상황이었다. 공통으로 정한 장소의 이름, ‘스페이스한남’으로 모두가 기사를 내는 것이 온당한 일이었는데, 이해관계 속에서 주소와 각자의 이름 + 쇼룸의 형태로 주소를 냈다. 아쉬운 부분이다.

3. 각종 디자인
대학교 4학년 휴학 중인 1명의 인턴디자이너와 함께 일했는데,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초안을 잡아주거나, 디자이너의 작업방향을 교정해주었다. 소량인쇄가 많다보니 인쇄는 대부분 성원애드피아에서 인디고 인쇄로 출력하였다. A3 사이즈의 접이식 브로셔는 적은 가격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4. 할로윈 파티와 전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내가 중심축이 되어 할로윈파티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전시 가능한 스튜디오의 작가와 나의 인맥을 동원하여 작가군을 구성했다. 할로윈파티를 위한 특별 화보를 촬영하고 포스터 이미지를 이태원 일대에 붙였다. 안주와 칵테일의 종류를 함께 정하고, 고유번호가 적힌 초대권 JPG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스페이스한남의 오프닝 파티로서 당일로부터 한달간 작품을 전시했다. 그림을 모으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계약서나 보관증도 필요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DJ가 와서 음악을 틀고, 칵테일을 팔고, 특수분장을 해주는 파티였는데, 중간중간 더 섬세한 볼거리가 필요했다. 혼자서 온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모든 행사와 시간 마다 숍인숍 업체와의 트러블이 내내 있었다. 이 파티도 전날에 카페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불투명하여 파티의 완성도를 높여야 할 시간에 필요없는 에너지를 소모했다.

5. 공간대여
행사를 위해 공간이 필요한 회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웹에서 검색해보고 오는 것이 보통이다. 전화로 많은 것을 물어보는 편이지만, 공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와서 보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와서 보고 판단하도록 유도했다. 보고나서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그들은 공간을 대여한다. 몇번이고 전화하고 방문도 하지만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는 건 수는 20% 정도다. 나는 AV장치, 마이크, 카페, 화장실, 조명 등의 정보를 전달하여 그들이 미리 예측가능하게 하고 그들이 행사를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행사 중에는 화장실 청소와 서빙도 마다하지 않았고, 기계에 대한 이해가 늘면서 나는 그들의 돌발상황의 문제들을 즉석으로 해결해주었다. 행사 후에 고마웠다는 인사를 들을 때 보람이 있었다. 나는 매번 행사를 마치고 나면 후기를 작성하여 행사 대응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여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보고, 만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대여 이벤트의 손님으로서 지인을 만나는 경우도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카운터에서 맥주를 따라주는 것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재미있었다. 몰려드는 손님을 맞는 것. 내가 따라주는 술잔에 의해 즉각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서비스업종에 별로 있어보지 않았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고, 돌봐주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대여이벤트는 흑인음악동호회(1000명), 소니뮤직코리아(40명),  IT 신제품 발표회(50명), 크리스마스 리빙제품 전시, 리빙디자인과 졸업전시, 연말 회사 파티(90명) 등을 유치하고 행사 진행을 도왔다.

6. 예술기획
스트리트 씬에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몇가지 번득이는 예술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끝내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산에 따라 구체적인 집행일자와 방법, 스탭까지 구성한 기획서를 1부 제작했고, 개념을 설명한 기획서를 2부 제작했다.

7. 장비구매
최소비용으로 최대비용을 낼 수 있는 각종 물품을 구매했다. 카페 체어, 테이블, 포토 스크린, 전동공구 등.

8. 사이니지
건물외내에 필요한 사이니지를 디자인하고 부착했다. 시간 안에 원하는 마케팅 효과가 있다면 그것에 맞추어야 한다. 내가 한 디자인이 좋냐하면, 좋다고는 못하겠다. 여유있는 예산을 가지고 세련된 감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얌전히 천천히 갈 수 있다. 투자금회수를 빠른 시점에 원한다면 더 강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자본과 선택의 문제다.

9. 문서화
모든 문서는 구글문서로 작성하여 공유하였다. 신입사원의 오리엔테이션부터 구글 스프레드시트 한장 읽어보면 파악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람이 바껴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문서화하였다. 컨택포인트와 대여공간을 이용한 거래처도 표로 만들었다. 매번 행사를 치루고 나면 회고를 통해 잘된 점과 매끄럽지 못한 점을 기록해 공유했다.

10. 인력관리
대표가 LINE으로 스케쥴관리를 할 것을 제안해주었다. 매일 들고다니는 핸드폰에까지 업무를 푸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신세대의 커뮤니케이션 툴이자, 휴대용 컴퓨터는 좋은 관리도구였다. LINE에 하루, 하루 회고를 올리면 각 스탭은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출근시간 – 업무 수행 정도(협업자) – 퇴근시간 – 겪고 있는 업무상 문제 – 내일 할일 등을 적어서 작업은 상태를 공유하도록 했다.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먼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은 지금의 회사에서도 내가 제안하여 실험하고 있다.

더 자세한 회고는 다른이를 탓할 수 밖에 없으니 이 정도로 회고를 마치겠다. 숍인숍과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처리할 수 없는 분쟁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나의 순간들과 작은 회사와 공간의 리더로서의 값진 경험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그 때의 고생은 그 당시에 받았던 소정의 급료와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국한 된 일을 조정하는 사람을 아트디렉터라 하고, 공감각에 관련된 일을 조정하는 사람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한다. 이미 ELOQUENCE매거진 때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을 했지만, 한남동에서 디렉터로서의 조정능력, 위기 대처능력이 대단히 성장했다. 앞으로도 좋은 돈벌이를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영어회화 능력수준이 낮다보니, 베를리너들 사이에서 나는 중학생 정도의 자아로 지냈다. 나의 발음을 현지인들이 못알아듣는 것이 미안했고, 모르는 단어는 내가 되물어봐야 했으니 항상 양해를 구하기 위해 미소짖고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대화의 깊이가 낮은 것은 당연한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보다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더 쉬운 단어를 선택했고, 보다 쉬운 토픽을 주로 얘기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다.

내 예술세계나 예술비평에 대한 것, 작품 설치에 관한 것들은 비교적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안녕”, “어디서 왔니?”, “아, 거긴 무엇이 유명하지?”, “이 단어는 너희말로는 뭐라고 하니?”… 뭐 이런.. ^^;; 마치 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들의 커뮤니케이션같은 느낌이랄까?

적절한 호감을 바탕으로 인류가 이 정도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세상이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예술도 일종의 대화라고 봤을때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색채나 형태를 그저 제시하거나 (사고작용에 비하여)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도의 예술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낮은 깊이의 예술은 빨리 이해할 수가 있고 관객의 스트레스 또한 적어서 예술소비자의 진입장벽이 낮다. 반대로 지속적인 연구나 토론의 가치있는 주제로 회자되기는 힘든 것이 또 단점이겠다.

나는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지식을 가진 고도화된 문명을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소통과 협업은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만을 거듭하는 사회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차가운 세상’이고,  낮은 깊이의 대화를 거듭하는 개인은 다차원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깊은 대화자에 비해 도태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피곤한 조직사회의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낯설게 보고, 바보가 되어보는 것. 현지인들 사이에서 모험하고, 아이처럼 서투른 대화자가 되어 하루종일 미소지으며 다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낮은 깊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느꼈던 휴식과 경쾌한 느낌을 나의 대중적인 작품 라인에서도 드러내고 싶다.

+
트위터가 저물고, 페이스북에서 피로감이 과중되어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이것으로도 설명할 수도 있겠다. 페이스북은 전투적인 정치적 입장의 충돌 메세지로 인해 피로감이 심하다. 하지만 이성적인 토론과 사고를 피하게 되는 SNS미디어의 발달은 우려스럽다.

사람들의 경향 혹은 사건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분류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지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편견’이다. 펼쳐져 있는 정보는 체계화하고 분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정보를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을 잘 분류하면 그들을 이용하기도 용이한 것이다.(MBTI테스트를 통한 조직의 구성과 인사관리 쯤 될까.) 의외성을 인정하고 인류에 대한 따듯한 시선만 가지면 될 것이다.

Pictoplasma Berlin 행사에서 귀여운것을 직접 그리거나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하고 착했고 배려깊었다. 나는 그들 안에서 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편안했다. 상상이 가나?

공예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을 즐기고, 끈기가 있고,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영업직의 사람들은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패션피플(이하, 패피)들을 떠올려보라. 엣지있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예민해야 한다. 그 엣지를 지키기 위해선 사람을 멀리하고 따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패피를 너무 미워하나? 남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도 가끔은 패피다. ) 많은 경영자들이 소시오패스의 긍정적인 발현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여 배치시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렇게 일과 취향은 성격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다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심미적으로 귀엽다는 것은 무엇인가? 귀엽다는것의 본질은 상대를 해할 의도나 힘이없다는 것. 가임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 http://yomsnil.com/시각감정-정의-귀엽다는-것에-관하여) 그래서 그것을 그리는 사람들도 귀여운 속성을 닮아 대부분 착하고 순하다.

그럼 섹시하거나 폭력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섹스중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가장 섹시한 사람들은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모델, 댄서, 스포츠맨. 창작자라는 것 자체가 우선은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 관조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전제 하에서 귀여운 것을 그리는 사람보다 섹시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섹시하고 폭력적인거다. 성적 결합은 어쨋건 폭력적이다. 서로의 합의를 통해 다가간다해도 자신의 냄새를 다른 사람의 몸에 옮기는 것은 분명 미시적인 폭력이다. 남성을 남성답게 하는 토스테스테론은 폭력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짝짓기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가장 큰 동인이다.

사람은 일평생 거울을 보면서 살고, 작가는 자신이 그리는 얼굴이 자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소리를 지겹도록 듣게 된다. 동전 뒤집듯이 0과 100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귀여움과 섹시함(폭력)이라는 양 끝단 사이에 수많은 정도가 있다. 당신은 얼마나 귀엽고 얼마나 섹시한가?

나 또한 나의 섹시함을 숨키고 귀여운 것을 그린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귀여운 것을 그리는 귀여운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 했다.

귀여운 것을 만들고 귀여운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 것이 포근하고 좋지만, 오늘밤에는 몰래 폭력적인 그림을 한장 그려봐야겠다.

전지구화로 이제 점점 낯선 풍경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세계인데, 이번 여행에서 다행히도 작은 문화충격을 발견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것이 철학이고 예술이니까. ^^


팁에 대한 나의 감정은 부정적이다. 미리 합의된 댓가로 용역을 제공받는 것이 거래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세금이 적용되지 않는 돈을 주고받는 것은 지하경제이다. 팁이라는 것은 정해진 요금에 더해 무언가를 받기 위해 미소짓고 정성을 보인다는 의미인데, 영 마뜩지 않다. 오늘날 현대사회철학의 기틀을 만든 서구에 아직도 팁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기본권
한국의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물과 화장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생명활동의 기본요소를 제공하는 것이라 인도주의적이고 호혜적인 사회약속이다. 하지만 유럽의 식당에서는 생수를 판매하고, 화장실은 이용요금을 받는다. 돈 없으면 우아하게 똥을 쌀 수도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복지의 기본 아닌가?

수돗물
영국에서는 수돗물(Tab water)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 베를린과 암스텔담에서는 아예 수돗물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음료 생산업체와 요식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경제 생태계다. 석회질에 대해서는 정수기를 사용하면 될텐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회적 손실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UpXq4-abkOM)

유료화장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베를린에서는 30% 정도, 암스테르담의 경우에는 70% 정도로 유료화장실을 만났던 것 같다. 유료화장실의 경우, 돈을 받는 만큼 대부분 청결한 편이었다. 유료화장실의 과금 방식은 관리자가 화장실 앞에 상주하여 입구를 지키고 서 있거나, 페이퍼타올을 건내주고 인사를 건내면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과금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밖에 사람이 없고 지하철처럼 동전을 넣어야 입장이 가능한 입장 설치로 입구를 가로막은 곳도 있었다. 사용료는 50센트라고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TIP의 개념으로 풀어놓은 곳도 있었다. 럭셔리한 공간을 추구하는 베를린몰에서는 화장실 앞에 검은색으로 시크하게 차려입은 중년여성이 관리하고 있는 묘한 풍경도 만날 수 있었다. 잘 차려입은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화장실 입장료를 받아내는 일이라니!

“화장실 관리하는데 돈이 드니까 니가 싸는 오줌이나 똥 만큼 돈을 좀 주면 좋겠어. 내가 이렇게 휴지도 건내주고, 미소로 인사도 건내잖아. 50센트 정도는 좀 주고 가라. 응? 응?”

이런 느낌이다. 차라리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라면 보람차겠지만, 화장실 이용객을 상대로 이런 쑥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내는 일은 너무나도 섬세한 동시에 하찮은 일이다. 이용자의 선의에 맡기거나, 단호하게 자동 입장장치를 세워 막아놓고 해당 인력은 직접적인 청결활동을 하는 것이 마땅해보인다.

KLM의 부킹 자동화 설비
이번 베를린 여행은 KLM을 이용했고, 네덜란드 Schipol공항에서 완전 자동화된 부킹시스템을 접했다. 기존에는 예매티켓과 화물의 부킹을 보통 8명 정도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2명 정도가 간단히 이용방법을 안내만 하고 있었다. 회물 부킹의 자동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항공권을 스캔하고, 가방을 올려 무게를 재고 확인버튼을 몇번 누르면 기계는 컨베이어벨트에 가방을 옮겨 넣었다. 이 과정의 작업도 어찌보면 위의 화장실 지킴이와 다를 바 없는 단순 노동이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적어진 일자리 걱정이 들었다. 그 많던 데스크 직원들은 이렇게 기계화되면서 그 만큼 퇴출되었겠구나!? 이런 나의 감상은 이율배반적인가?

반달리즘
나는 무분별하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반달리즘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미 영국이나 파리에서도 많은 그래피티를 접했지만 베를린에서는 왠지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예술적 완성도 높은 그래피티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섹시함을 강조한 간판에 흔하게 적혀있는 비아냥과 낙서였다. 통쾌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광고간판은 어떤가? 소비자를 유행에 뒤쳐진 촌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나무란다. 고정된 시선을 각인시키고 남의 눈을 의식하도록 경쟁시킨다. 그런 문구들로 인해 기분이 상해도 우리는 SNS로 욕을 하고 만다. 어느 벽이나 간판이 타인의 사유재산일 지언정 그것으로 발생하는 시각폭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 시각폭력에 또다른 시각폭력으로 바로 맞받아치는 그래피티는 시각문화의 복싱 경기를 보는 듯한 쾌감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