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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Ville

Jeremy Ville

Parra

Parra

Jon Burgerman

Jon Burgerman

MC Bess

MC Bess

무엇을 기준으로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일러스트라고 표현했을까?
미학적 가치와 지시하는 내용의 참조성이 관건.

Murakami Takashi

Murakami Takashi

Kaws

Kaws

KWON, Ki-Soo

KWON, Ki-Soo

무라카미 타카시는 현대일본의 오타쿠 – 재패니메이션 세대의 시각문화를 담고 있다. 일본의 전통회화에 뿌리를 둔 슈퍼플랫이라는 이론을 설파. KAWS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대중문화를 재해석. 권기수는 한국화를 디지털 사이버공간에서 펼쳐놓은 듯한 그림으로 미학적 해석이 가능함.

빅뱅이나 지구의 기원까지 쫓아올라가지 않더라도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로, 단순한 개체가 점점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진화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다. 일례로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티벳인들은 다른 지역의 인류에 비해 적은 량의 산소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혈관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인류가 지금 이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산소가 희박한 고원지대에서 산소공급에 유리한 혈관을 가진 돌연변이 아이가 성인까지 살아남고, 불리한 조건의 영아는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만들어진 자연선택이다. 진화라는 것의 절대요소는 죽음이고, 진화의 원인은 질병을 포함한 환경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인류는 공학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의학으로 질병을 이겨내었다. 환경적응에 불리한 유전자들도 인류의 발명품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자연복제할 수 있는 시기까지 그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21세기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는 급격히 둔화되었다.

그대신 인류는 이제 스스로에게 만든 조건으로 진화한다. 인체에 해로운 유전자조작 식품이나 발암물질, 방사능 피폭, 도시의 스모그와 같이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위험에 의해서 죽음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배아 상태의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서 신체와 지능을 강화해갈  것이다. 현재도 신체의 색깔과 같은 요소들은 배아상태에서 선택이 가능하다고 한다. SF영화, 가타카에서 그린 미래가 눈 앞에 다가와 있다.

인류가 시간을 거듭하여 모든 지식에 접근하는 것은 선(善)한 일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재해를 예측하거나,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회피할 수 있다. 인류가 낮은 지적 단계에 있었을 때 신의 행위로만 여겼던 많은 일들의 인과관계를 이제 제대로 파악하고, 심지어 재연할 수도 있다. 윤리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기능과 원리를 파악하는 일은 한 세대의 삶의 연장과 풍요를 위해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이다.

그래서 그 늘어난 앎을 바탕으로 인류는 스스로 진화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다원성을 확보하는 선에서 최대한 공정해야 하는데, 이는 벌써 맞닥들인 문제다. 질병이나 연령에 따른 의료보험 적용 범위에 변화를 주면, 양적인 연령별 인구수는 그 정책결정에 의해 변화한다. 결국 인간이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고 심판하는 것인데, 인류의 앎이 증가할수록 이런 설정은 세밀해져야 할 것이다. 진화를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자 혹은 그룹은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정당한 결정을 하여야 한다. 혹은 소수집단을 위해 속임수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중들은 그 진화의 틀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궁리해야 한다.

전형적인 SF 디스토피아의 스토리로 흘러가지만, 앎이 증가하는 인류의 방향성은 그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 위에서 예술가답게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가 좀 더뎌진다고 해도 별 일은 아니다. 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급은 슬기롭게 투쟁해야 할 것이며, 적당히 행복을 위해 균형을 잡아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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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Hannam

한남동에서 <스페이스한남>이라는 공간을 ADDLIP 대표님과 함께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전시와 대관, 카페로 운영하는 공간이고, 3층(대로변 지하1층)에는 나의 작업실이 있다. 아티스트이자, 개인사업자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지키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급여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지난 <Made In Mullae> 전시의 피드백으로서 내년 2월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제안받아 조율 중에 있고, Pictoplasma의 초대로 내년 3월에는 베를린에서 스피치와 전시를 하기로 되어있다. 곧 SSE Zine으로 작품집도 나온다. ADDLIP은 아직 작은 회사이고, <스페이스 한남>은 막 시작한 공간이라 바쁜 일상의 연속이지만, 작업자로서 최상의 작업환경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전히 아티스트의 삶이란 불안하고 위태하기 짝이 없지만, 어렸을 때 꾸었던 꿈에 조금은 다가섰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를 꿈꾸던 어린 감수성에 큰 충격을 주었던 84년의 전시 <휘트니 비엔날레인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을 미술반 친구들과 들러 언제쯤 내가 여기서 전시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비용이 지불되는 해외 초대전을 꿈꿨지. 이는 확실히 어렸을때 꿈꿨던 그런 모습들이다.

가을은 가을이다. 주말밤 늦게 <스페이스한남>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갈때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가 꿈꿨던 내 미래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보단 더 안정된 감각과 부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이쁜 여자친구가 곁에 있을거라고 상상했고. 꿈과는 다른 현실이지만, 뭐… 지금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지금 이 공간을 성공시켜야겠고, 나의 예술을 완성시켜야겠다. 앞으로 잡혀있는 전시들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 여전히 꿈꾸고, 여전히 나를 구축해나가야한다.

2015년을 더 이쁘게 만들고 싶어서 일찍 회고를 시작한다. ?남은 2개월여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겠다.

한창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어느때보다 월드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홍명보를 감독으로 앉혔고, 감독이 된 그는 기성용, 박주영 등을 기용하여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로 삼았다. 그런데 이들은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부족한 성품과 파벌의식을 드러냈다. 홍명보의 과거 열하나회 사건, 박주영은 병역기피와 거짓말, 기성용의 최강희 감독을 향한 막말파문 등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면면을 드러냈고, 최강희 감독체제에서는 해외파 선수들 중심의 올림픽팀 출신 선수들이 국내파 선수들을 따돌리는 상황을 연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기보다는 또 다른 소집단을 만든 모양새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되자,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한민국팀을 응원하게 된다. 아무리 저주스러운 인성의 팀이라도 ‘대한민국이 기본은 하는 팀이구나’라는 해외의 인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홍명보와 박주영의 팀이 기적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꼴을 보고싶지는 않지만, 16강 정도의 성적은 내기를 원한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마찬가지일까? 이란, 호주, 일본 등 아시아의 팀들이 저조한 성적을 반복하면 아시아에게 주어진 4.5장의 아시아쿼터가 축소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을 응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데도, 일제시대에 대한 구한(舊恨)과 일본과의 정치적인 긴장관계 때문에 아시아연대로서 편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반면 일본TV에서는 한국의 편에 서서 응원하는 중계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정 차이일까? 아니면 대동아공영을 꿈꿨던 그들과의 배포의 차이일까?

어디까지가 우리이고, 어디서부터가 너일까?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는 오늘날의 지구 위에서 우리는 국가라는 굴레를 벗고 개인주의적 태도를 추구한다. 필요에 따라서 우리가 되기도 하고, 네가 되기도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교육의 발달, 번역기술의 발달로 국제적인 친구들이 늘어가고, 국가라는 아이덴티티가 약화되는 오늘날, ?출신국가라는 굴레보다 팀칼러에 맞는 아이돌 축구선수를 조합해놓은 클럽팀에 더욱 동질감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어떤 기회를 맞이하여, 정해져 있는 시간과 환경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보여주려다보니 큰 행사를 앞두고는 늘 잠을 줄여가며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번에는 개인전, ABSOLUT 예술지원 사업과 방송출연이 겹쳐, 바쁘고 극도로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평상시에 마시지 않던 카페인드링크도 마셔가며 수면부족의 상태로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바빴던 이 시간들을 시간순으로 회고하고 반성해본다.

개인전
5월14일은 개인전이 잡혀있었다. 설치는 5월11일. 지난 전시로부터 6개월만인데, 그 동안 만들어낸 도자기와 함께 이번에는 페인팅 작품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Transform Today
개인전을 준비하는 중에, 5월17일이 데드라인으로 잡혀있는 ABSOLUT의 Transform Today 예술후원 제안을 받았다. 시일이 겹쳐서 다소 무리한 스케쥴이었지만, 매력적인 제안이었기에 흥쾌히 수락했다. 거리를 예술로 바꾸는 프로젝트이고, 서울의 3개 장소가 정해진 상태였다. 처음엔 예정지로 연남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나의 작업실을 포함한 문래동에서 예술활동을 펼칠 것을 역으로 제안했다. 문래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몇몇 작가들을 컨택했고, 광고주에게 시안을 제시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Absolut

근 2주 동안은 벽화를 그릴만한 건물의 건물주와 인근 사장님들과 대화를 통해 벽을 섭외했다. 동시에 작가들과는 작품의 방향성과 표현방식을 조율했다. 표면으로 들어나지는 않지만, 이는 상당한 시간이 들고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벽에 흉측한 그림을 그리면 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콘트롤하려 들다보면 작가들에게 또 욕을 먹는다.

문래동 철공거리의 좁은 골목 사정 상, 벽화 작업은 주로 주말에만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나는 평일에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주말에는 벽화작업을 할 계획을 세웠지만, 평일에도 커뮤니케이션 업무로 좀처럼 내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벽 섭외과정을 거쳐 5월3일 첫 작업을 개시하였다. 첫날은 벽과 골목을 청소하고, 어두운건물을 흰색이나 회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면서 환경개선을 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아티스트들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각 아티스트들이 원활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을 하거나 물감을 준비하고, 주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서포트업무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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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개인전 설치 하루 전이었으나, Transform Today의 촬영이 잡혀있었다. 11일(일요일)은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도 있었고, 나의 개인전 설치날이기도 했기에 토요일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나는 당일 3명의 어시스턴트를 기용하여그림을 시작했고, 3명 정도의 작가들이 골목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날은 Transform Today 광고제작팀과 STYLE LOG 방송팀이 촬영을 왔다. 내가 그리는 그림 하나에 10여명의 촬영스텝이 매달려 찍고 있다보니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마르는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림의 진척은 더뎠다. 그런 압박 속에 9시반에 출근한 어시스턴트들을 점심도 먹이지 않은채 오후 5시까지 일을 시켜버렸다. 해가 지기전에 두번의 인터뷰까지 마치고 나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날의 어시스턴트 중 2명에게는 다시 부탁하여 밤까지 개인전 도자기 포장을 함께 했다. 그 둘은 9시반부터 일을 시작하여 10시반에 퇴근했으니 엄청난 노동강도였을 것이다.(반성중…) 덕분에 무사히 포장을 마쳤고, 나는 밤사이에 캔버스에 바니쉬를 작업을 했다. 철야를 하고서 다음날 아침 8시 양평 닥터박 갤러리로 출발하여 무사히 설치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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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
STYLE LOG작가들과 회의를 하고, 콘티를 받았는데, 나의 작업실에 오렌지캬라멜의 나나가 방문하고, 나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촬영 이틀을 남겨두고 작업실을 다시 꾸며야할 필요가 생겼다. 제 아무리 낮은 시청률이라고 해도, 방송에 나가면 누군가는 볼테니, 잘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촬영을 위해 작업실을 꾸미는 것은 새로운 모티베이션을 주었다. 또다시 열성적으로 작업실을 꾸몄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번째가 되자 지난번보다 훨씬 편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나의 과장된 연기에 스텝들도 만족하는 눈치였다.(ㅎㅎㅎ)

나나와 염승일, Yomsnil

5월17, 18일
다시 맞이한 주말. 작가들의 그림을 진행시키고, 나는 인쇄물 형식의 벽화를 부착하였다. 오후엔 공중퍼포먼스팀 ‘날다’와 구체적인 리허설을 진행하였다. 최종적으로 천과 공으로 율동감을 만들고, 색깔있는 의상으로 구성을 하기로 했다. 가장 큰 벽은 서기원 작가에게 하나를 더 부탁하였고, 나도 하나를 맡았다. 내가 밑그림을 그린 후, 두명의 어시스턴트에게 채색을 맡겼다.?이날 역시도 만족스럽지 못한 스피드였다. 나의 그림도, 기원이의 그림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촬영은 20일로 정해져 있고, 더 이상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날이 져물고, ?과감하게 붓을 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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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월요일엔 날다팀의 의상을 준비했고, 나나와 함께 그렸던 그림의 개선작업과 나나를 위한 헌정작품을 준비했다. 디자인을 하고 그것의 시트지까지 주문하여 스프레잉을 해야하니 빡빡한 스케쥴이었다.?나나와 함께 만드는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했지만, 나나와 함께 만든 작품을 퀄리티 높게 완성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나나를 위한 기념작품에 더 정성을 쏟았고, 그런대로 귀여운 레터링 작품이 나왔다. 촬영전날 저녁까지로 약속했던 신사장의 셔터입구 쪽 개조가 지지부진했다. 신사장은 약속한 시간을 못지켰고, 촬영당일 아침에야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부족하나마 이 역시 영상에 그럴싸한 정도에서 작업을 끊고, 상층부가 갤러리로 기능하도록 그림 설치작업을 부탁하였다. 당일 아침 어시스턴트, 현영이에게는 미리 준비한 시트컷팅지를 주고, 스탠실기법으로 그림에 캡션을 달도록 부탁하였다. 나는 10시부터 문래예술공장에서 윤지수가 만든 의상을 체크하고, 발레리나들과 안무를 짰다. ?11시반에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STYLE LOG의 세명의 MC와 촬영을 시작했고, 작업실 앞과, 나의 Metropolisaurs Attacks!! 작품 앞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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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들을 보다 부드럽게 처리했을 수도 있었을텐데,시간관계상 빠르게 촬영을 진행했다. 문래동 거리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다시 문래예술공장으로 돌아가 발레팀과 날다팀의 공연을 완성시켰다. 이미 오브제들이 완성도를 갇추고 있었고, 하늘에서 공연하는 날다팀의 퍼포먼스자체가 볼거리여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던 3주간의 긴 마라톤(!)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고, 부족한모습이지만, 이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아직도 생각할 꺼리들이 남아있다. 그것들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 다시 정리해보겠다. ?여하튼 이렇게 글로 한번 근래의 일들을 정리하여 적고나니 이 일이 제대로 끝난 것 같다. Style Log방송은 온스타일 채널에서 6월6일 저녁9시에 첫방송이 나가고, ABSOLUT의 온라인광고는 6월13일부터 시작된다.

클래식음악은 중산층의 상징적인 취향(아비투스)이다. 클래식 음악을 온전히 즐기려면, 그것을 교육받을 기회와 30분 이상의 플레잉 타임 내내 멜로디의 변화를 인지하며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통근시간이나 업무 중에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듣는 것으로는 그 플레잉타임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대중)은 대체로 3~5분 짜리의 대중음악을 즐긴다. 레코드기술의 발달로 잠시간 펼쳐졌던 클래식의 대중화가 다시금 쪼그라들어 버린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독해하는데에 드는 시간비용이 많다면 바쁜 삶을 살아가는 도시근로자들에게 사랑받기 힘들다. 별도의 학습을 요하는 레퍼런스를 갖은 작품이라면, 그만큼 시간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대중 예술과 엘리트 예술의 차이는 소비재와 사치품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구분은 엘리트예술이라는 구분과 큰 교집합을 갖는다. 소수의 팬을 갖게 되므로 투자에 대한 수익의 회수가 더디다. 소비자의 수가 적은 만큼 소비자가격은 높게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사치품의 특성.

그동안 신경 써왔던 도예를 잠시 멈추고 이제 본격적으로 회화를 다시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다양한 고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성이 있는 그림들은 비교적 대중적인 것이고, 소비시간이 짧은 편이다. 짧은 시간 내에 소비가 가능하면서 그것을 더욱 즐기려고 할때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지나치는 길거리에서 1초를 봐도 흥미롭고, 그림 앞에서팔짱을 끼고 봐도 재미있어야지. 클래식의 깊이감이 있는 후크송이랄까?

본격적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기에 앞서 내 아트워크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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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1.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은 스튜디오와 목공실의 두가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작업실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나온 폐기물 더미를 복도에 방치해놓으니, 작업실 공유 구성원들이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목공실을 확인해보니 대청소를 마치고 ?쓰레기통을 없앤 상태였다. 그래서 목공실에서 나온 쓰레기를 폐기물 더미에 투기하기 시작한 것. (폐기물들은 따로 폐기물처리업자를 불러서 비용을 들여 배출해야 하기 떄문에 아직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당연히 일반쓰레기는 폐기물 봉투에 넣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그래서 폐기물 봉투를 치워놓고 목공실에 새로운 쓰레기통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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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2. 쓰레기분리수거를 잘 지키지 못하는 구성원이 있다. 몇번 설명을 하였음에도 분리수거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미화원이 수거를 하지 않거나 작업실 내에 악취가 발생하고, 미관상 좋지 않다. 결국 구성원의 인지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최소한의 비용(시간과 돈)을 들여 쓰레기통 위에 지워지는 펜으로 글씨를 적어넣고, 개인쓰레기통을 만들어 주었다. 최소의 시간과 최소의 비용으로 쾌적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행정을 선택하였다.

위의 간단한 사례에서 환경(건축) 또는 구조가 사람의 행동을 디자인한다는 것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스스로 갖는 것도, 갖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청결도라던지 소음도라던지 ?각자가 원하는 정도도 제각각 달라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는 그냥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 정도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되어야 할 것이다. 6명이 모인 작은 사회에서도 이런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국가라는 공동체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견해들이 혼재해 있겠는가? 이래서 평등과 자유 속에 규제는 어려운 숙제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짐(Gym)의 퍼스널트레이너는 제임스(James)라는 영어 이름을 쓴다. 그는 김상훈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데도 짐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쓴다. (그 한글 이름도 본명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는 글쟁이들의 필명이나,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들의 가명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

제임스 선생님 vs 김상훈 선생님
무엇이 다를까? 김상훈은 처자식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예컨데 김상훈은 상문고등학교 출신이고, 4번의 교통신호위반 경력이 있고, 5번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여 딸을 하나 키우고 있다. 김효인의 애비이고, 김철수의 자식이며, 김명호의 손자이다.

하지만 그런 김상훈이 제임스가 되는 순간 그런 족보관계와 사회적 짐들이 없어져 버린다. 그저 스스로 건강과 밝은 에너지의 상징이 되어 고객들에게 한번더 복근을 움직여 크런치 1회를 추가할 것을 격려하는 존재가 된다. 제임스는 살짝 들뜬 느낌이다. 가볍고 경쾌하다.

그가 정한 예명은 또 다른 한국이름이 아닌 미국이름이다. 미국 시트콤의 이미지도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만나는 미키마우스처럼, 서구화된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의 환상 속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산업사회에서 쾌락을 극대화시킨 기호식품, 탄산음료와도 같다.

스스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한국 미술계에도 더잭, 찰스장, 마리킴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과 그들의 이름은 경쾌하게 읽힌다. (마리킴은 본명이다.)

염승일 vs 욤스닐
YOMSNIL을 염승일이라고 읽을 때와 욤스닐이라고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것의 차이는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그 이름을 듣는 본인이 다를텐데, 현재의 나로서는 염승일이라고 불리울때, 보다 진솔한 삶의 상처와 기록, 사회적 관계가 고스라니 무게감있게 다가오고, 욤스닐이라고 불리울 때는 보다 가벼운 느낌이 든다. 일례로 가끔 고등학교 동창들이 ‘욤’이 아닌 ‘승일’이라고 나를 부를때, 알몸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 Pineapple Yom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는데, 그 이름이 가지는 한계가 있었다. 파인애플 욤이었던 시절, 나는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있었고, 새콤달콤한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뒤, 아티스트를 하겠다고 사람들을 만난 초기에도 난 Pineapple Yom이라는 영문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의 연유를 질문을 받았을때 20살때 내 머리의 색깔과 그때의 만화를 설명하다보니 지금의 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보다 진지하고, 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는 염승일이라는 나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미키마우스가 인생의 고뇌를 표현하려고 하면 그것만큼 아이러니하고 웃긴 상황이 없을테니 말이다. 현실에서 숨어버린 이름은 그만큼 한계성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정한 나의 영문명은 Yomsnil이다. Yom Seungil이라는 비자 상의 이름은 ‘염슨길’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일본생활을 하면서영문의 한국적 표기방식의 한계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정확하지 않을 바에는 보다 발음하기 쉽고, 본명에 가까운 이름으로 Snil이라는 스펠링으로 지었다. 이런 사연으로 사회적 자아인 염승일과 최대한 가까운 Yomsnil이란 이름을 지어 돌아왔는데,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염승일과 욤스닐은 다시 내 안에 인식의 차이를 가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YOMSNIL과 염승일과 욤스닐이 모두 같은 심상을 주면서, 또 새로운 인식을 만드는 것이 숙제이다.

가끔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해본다. 저자성 있는 삶이라는 것이 나의 모토였던 만큼, 내 이름으로 검색했을때, 나의 많은 이미지가 검색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그렇게 관계 맺는 것을 원한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제임스라는 이름이 어떤 심상을 줬던 것처럼, 언젠가 사람들에게 ‘염승일’이라는 이름이 예술적인 감성, 사회적 고민, 다위니즘, 나의 심미성의 분위기를 전하길 원한다.

혹시 모르지~ 영어회화수업을 들을때 영어이름을 정하듯이 먼훗날 어느나라의 누군가가 예술적인 분위기의 감성을 전하려고 ‘YOMSNIL’이라는 예명을 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