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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Posts tagged 문화충격

전지구화로 이제 점점 낯선 풍경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세계인데, 이번 여행에서 다행히도 작은 문화충격을 발견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것이 철학이고 예술이니까. ^^


팁에 대한 나의 감정은 부정적이다. 미리 합의된 댓가로 용역을 제공받는 것이 거래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세금이 적용되지 않는 돈을 주고받는 것은 지하경제이다. 팁이라는 것은 정해진 요금에 더해 무언가를 받기 위해 미소짓고 정성을 보인다는 의미인데, 영 마뜩지 않다. 오늘날 현대사회철학의 기틀을 만든 서구에 아직도 팁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기본권
한국의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물과 화장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생명활동의 기본요소를 제공하는 것이라 인도주의적이고 호혜적인 사회약속이다. 하지만 유럽의 식당에서는 생수를 판매하고, 화장실은 이용요금을 받는다. 돈 없으면 우아하게 똥을 쌀 수도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복지의 기본 아닌가?

수돗물
영국에서는 수돗물(Tab water)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 베를린과 암스텔담에서는 아예 수돗물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음료 생산업체와 요식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경제 생태계다. 석회질에 대해서는 정수기를 사용하면 될텐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회적 손실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UpXq4-abkOM)

유료화장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베를린에서는 30% 정도, 암스테르담의 경우에는 70% 정도로 유료화장실을 만났던 것 같다. 유료화장실의 경우, 돈을 받는 만큼 대부분 청결한 편이었다. 유료화장실의 과금 방식은 관리자가 화장실 앞에 상주하여 입구를 지키고 서 있거나, 페이퍼타올을 건내주고 인사를 건내면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과금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밖에 사람이 없고 지하철처럼 동전을 넣어야 입장이 가능한 입장 설치로 입구를 가로막은 곳도 있었다. 사용료는 50센트라고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TIP의 개념으로 풀어놓은 곳도 있었다. 럭셔리한 공간을 추구하는 베를린몰에서는 화장실 앞에 검은색으로 시크하게 차려입은 중년여성이 관리하고 있는 묘한 풍경도 만날 수 있었다. 잘 차려입은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화장실 입장료를 받아내는 일이라니!

“화장실 관리하는데 돈이 드니까 니가 싸는 오줌이나 똥 만큼 돈을 좀 주면 좋겠어. 내가 이렇게 휴지도 건내주고, 미소로 인사도 건내잖아. 50센트 정도는 좀 주고 가라. 응? 응?”

이런 느낌이다. 차라리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라면 보람차겠지만, 화장실 이용객을 상대로 이런 쑥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내는 일은 너무나도 섬세한 동시에 하찮은 일이다. 이용자의 선의에 맡기거나, 단호하게 자동 입장장치를 세워 막아놓고 해당 인력은 직접적인 청결활동을 하는 것이 마땅해보인다.

KLM의 부킹 자동화 설비
이번 베를린 여행은 KLM을 이용했고, 네덜란드 Schipol공항에서 완전 자동화된 부킹시스템을 접했다. 기존에는 예매티켓과 화물의 부킹을 보통 8명 정도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2명 정도가 간단히 이용방법을 안내만 하고 있었다. 회물 부킹의 자동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항공권을 스캔하고, 가방을 올려 무게를 재고 확인버튼을 몇번 누르면 기계는 컨베이어벨트에 가방을 옮겨 넣었다. 이 과정의 작업도 어찌보면 위의 화장실 지킴이와 다를 바 없는 단순 노동이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적어진 일자리 걱정이 들었다. 그 많던 데스크 직원들은 이렇게 기계화되면서 그 만큼 퇴출되었겠구나!? 이런 나의 감상은 이율배반적인가?

반달리즘
나는 무분별하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반달리즘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미 영국이나 파리에서도 많은 그래피티를 접했지만 베를린에서는 왠지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예술적 완성도 높은 그래피티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섹시함을 강조한 간판에 흔하게 적혀있는 비아냥과 낙서였다. 통쾌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광고간판은 어떤가? 소비자를 유행에 뒤쳐진 촌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나무란다. 고정된 시선을 각인시키고 남의 눈을 의식하도록 경쟁시킨다. 그런 문구들로 인해 기분이 상해도 우리는 SNS로 욕을 하고 만다. 어느 벽이나 간판이 타인의 사유재산일 지언정 그것으로 발생하는 시각폭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 시각폭력에 또다른 시각폭력으로 바로 맞받아치는 그래피티는 시각문화의 복싱 경기를 보는 듯한 쾌감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