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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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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 것은 분업과 전문화이다.
집단노동을 통해 인류는 고도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채집, 수렵을 하고, 농사짓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다사다난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나눠서 하게 되었고, 일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게 되었다. 가족 안의 분업을 넘어 사회 공동체의 분업이 시작되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지배계급에 의한 폭력의 테두리 안에서 분업의 자리가 제시된다. 메디치 가문이 부를 축적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문명이라는 것은 계급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분업의 단점; 분업은 피곤하고, 다른 일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너무 잘게 잘라져 반복되는 작업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로보트의 행동패턴이 사람의 모습을 흉내내기 위해선 불필요한 동작들이 필요하다. 물컵을 들어 마시는 사이에 사람은 눈을 깜박인다던지, 고개를 돌린다던지 인간은 그런 불필요한 동작들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좋아하는 노래도 하루종일 듣고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고통이 된다. (따라서 한가지 일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태울 수 있는 오타쿠는 21세기에 또다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또한 한가지 업무에만 특화된 인간은 그 일을 떠나서 자립할 수 없다. 해고 노동자들이 직장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걸고 싸우는 모습을 통해 그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아나키스트인 강신주 철학자는 강의에서 분업의 톱니바퀴가 아닌 전인(全人)이 될 것을 주장했다. 분업의 피로를 느꼈던 나는 공감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분업하지 않는 전인들의 사회의 예란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였고, 그들은 다른 고도화된 침략자들의 동맹(국가)에 의해 멸망하였으니까. 2차대전을 겪은 지식인들이 문명에 대한 회의로서 차가운 사회(원시부족사회)와 뜨거운 사회(서구문명사회)가 우열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그저 다른 삶의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레비 스트로스) 오늘날의 문명사회가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고 있기에 그들의 주장은 그저 낭만주의적인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단정한다. 하룻밤만 야영을 해봐라. 모기와 들짐승, 타인에 의한 공포가 들판엔 도사리고 있다.

강신주의 철학강의를 통해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을 말끔히 털어준 것은 자유주의자, 정규재의 강의였다. 너무 빠른 변화와 속물주의의 속도가 사람을 지치게 할 지언정 끼니를 걱정할 필요는 없게 해주니까. 보다 안락한 생존을 제공하니까. 매연이 싫다고 한들, 편리한 도시의 교통수단을 버릴 수 있는가? 더욱 쾌적한 것들로 수정해 나아갈 것이지, 과거로 회귀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자유주의는 냉정하다. 성공하는 것도 스스로의 책임이고, 망하는 것도 스스로의 책임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들의 실질적인 고통을 돌봐주지 않는다. 기회는 동시에 위험을 제공한다.

분업도 도시화와 그 궤(軌)를 같이 하고 있다.

나는 올해초까지만 해도 분업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논점의 태도를 견지(見地)해왔다. 그런데 정규재의 강의를 통해 정확하게 수정된 나의 노선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고,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톱니의 자리를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물론 기존의 지배계급이 제공하는 톱니바퀴의 자리도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섬세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다른 톱니바퀴로 변신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세상이란 전쟁터에서 안락함에 취해 있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전인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류역사적인 입장에서는 퇴보이다.

공부가 거듭되면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 최근 몇개월 사이에 우측진영의 이야기에 수긍이 가는 편이다.(笑)

강신주 철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
http://www.artnstudy.com/
http://school.ohmynews.com/

정규재TV
http://jkjtv.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