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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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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FY는
Happy Alternative Functional Youths
(행복한 대체가능한 기능적 젊은이들)의 이니셜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염승일(YOMSNIL)의 캐릭터 프로젝트입니다.

HAFY는 현시대를 대체할 신인류를 은유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싸우고, 협력하며 시간의 너머로 진화해나갈 그들.
형태적으로 머리 위의 다양한 모양의 뿔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유전자 다양성을 상징하고, 뻥 뚫린 눈은 그들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HAFY의 모습에서 현재의 인간군상들과 미래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hafy #yomsnil #하피 #hafyhat #diversity #유전자다양성 #다양성

YOMSNIL 2013~2017 POPUP SHOW at KLEE, SEOUL
HAFY Coushion
HAFY Doll Poster
Pakcage Design of HAFY Doll 1
Pakcage Design of HAFY Doll 2
Pakcage Design of HAFY Doll 3
Walking guys are walking, at the exhibition 2015

Renewals of Character

투박했던 스팀보이 윌리가 미키마우스가 되었듯이, 좀 덜 귀여웠던 어두운 느낌의 HAFY를 귀엽게 업그레이드했다.
이제 이걸로 그림도 그리고 장사도 할꺼다. 돈 벌꺼다!

소비적인 삶의 정점에 있었던 2009년, 나는 철학공부를 시작하였고, 섣부른 철학공부는 나를 반문명적인 생각들로 몰아갔다. 다시 현대문명을 긍정하기까지는 5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2014년부터는 다시 철학적인 안정감을 찾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 철학들을 다시 짚어보자. 단편적인 예술활동에서는 이런 것들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HAFY의 내러티브에는 이러한 나의 태도가 고스라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다위니즘
다윈혁명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어린시절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진화론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나, 공부를 통해 이제 명확히 깨달았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어느 책보다 쉽고 명쾌하다. 강력한 사회생물학적 통찰이 있다.  각 주체의 투쟁과 경쟁, 생존 기술을 인정하게 된다. 종교라는 자기통제에서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허황되었던가?

-멘탈甲
기본적으로 적자생존을 인정하고 나면 생존을 위해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투쟁하거나 협조하게 된다. 감성적으로 징징거리는 사건보다는 맞서 싸우고, 생존해 나가는 드라마가 매력적이다.

-분류학
자신의 위치를 알려면 분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투쟁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상대를 알기위해서는 분류(classing)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선입견이지만, 동시에 생존기술이다.

-다원주의와 소멸
세상엔 이런저런 다양한 유전자들이 있어야 한다. 변화된 세상에서 어떤 유전자가 적합할지 모르니까. 지구 안의 인류문명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문화단위(myme)를 포함한 다양한 덩어리가 다채롭게 지구 위에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인권에 제약을 가하는 문명들은 어떤가? 여자에게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우게 한다거나 노예제를 인정하는 문명은? 계속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과학으로 유럽에서 기독교가 소멸했듯이, 하루종일 코란을 읽히는 문명은 결국 소멸하거나 변화해야할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관찰자
그런 문명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와 문자로 교류하고 평화적으로 싸워 변화해야 한다. 인종청소나 식민지배는 가학적이다.  괴로운 주체가 많다. 사회의 계층 다툼도 마찬가지다. 이 생존의 역사 위에 예술가라는 나의 역할은 관찰자이고 위트있는 기록자이다.

-귀여움
그래서 귀여워야 한다.  귀엽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적의를 품거나 해할 수 없는 외향적 특질이다. 나는 너희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역할을 할께. 내가 계속 지켜보게 해줘. 실생활과 달리 기록을 해야하는 예술가적 자아는 계속 귀여워야 한다.

-도시자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았다. 시골에 살지 않았으니 도시가 주는 자유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공부했고 깨쳤다. 스쳐가는 얼굴들 사이에서의 고독과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지속적인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수준의 간섭과 단절의 시간을 교차시키면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Social Network Service
모두 연결되어 있고, 타임라인을 통해 소식이 전해진다. 만나지 않아도 상대방의 근황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의 facebook 친구 리스트 중에 몇명의 섹스를 했던 상대와 몇명의 키스했던 사람이 있는가? 몇명 정도의 삶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는가? 과거에 연인들이 적대적으로 헤어지면, 관계를 끊고 다른 세상의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이제 세상은 SNS로 묶여 있어 연결을 끊어낼 수 없다. 그래서 도시민의 윤리처럼 적당한 매너로 마무리하고 적당한 거리로 되돌아 가야한다. 마치 길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처럼 낮은 연결고리로 사람들의 얼굴이 주렁주렁 엮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리스트와 관계가 확보된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재기용된다. facebook을 켜면 하루에 3~4번은 생일축하 메세지를 건내야한다. 그래서 난 2013년부터 아무에게도 facebook 생일축하메세지를 보내지 않는다. 더 민주적인/ 자유주의적인 태도로 평준화된 거리를 만든다.

-이미지라는 밈(MYME)
이제 동시대에 인정 받지 못한 예술이 후대에 재평가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는 순식간에 NET을 타고 공유되어 전 지구로 퍼져나간다. 인류는 방대한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선배들이 만든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 그렇게 시각물도 밈MYME으로서 남아 생존하기 위해 새로워야 하고, 후대에 인용되어야 한다.

원래 HAFY는 십대 시절부터의 나의 꿈인 Happy Artist For You의 약자이고, 첫 홈페이지의 주소이기도 했다. (hafy.net; 도메인 사용계약 갱신을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계속 이 주소를 썼을 것이다.) 어렸을때부터 캐릭터 중심적인 작업을 했다. 어렸을땐 지점토로 무언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줬고, 대학생 때는 나의 상상을 담은 캐릭터 세트를 만들어 책상 앞에 붙여놓곤 했다.

호로박사와 간호사 야메(2000) / 파인애플V(2002)

20대초반에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닥터호로와 간호사 야메>를 홈페이지에 올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른바 캐릭터 사이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20회 정도의 웹툰과 1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쌈넷모션그래픽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머의 전개방법이 고정적이었던 편이어서 소재 고갈을 느끼고 접게 되었다. 그 뒤 공모당선를 통해 인터넷 조선일보 사이트와 나의 홈페이지에 1년간 주 2회 <파인애플V>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하였다. 그 뒤에 그래픽디자이너로 긴 회사생활을 했고, 30대중반에 다시 도시문명의 반성을 담은 우화형태의 <블랙포레스트스토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20회분 정도 의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The Black Forest Stories (2010)

캐릭터는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힘을 주고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기반성적인 성격이라 더욱 그러하겠지만, 어느 순간 하던 일이 보잘것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만큼 평생을 이끌어갈 수 있는 단련된 최종형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고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원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30대 중반의 나이에 나의 최종형의 캐릭터로서 만든 작품의 이름에 HAFY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에 역으로 Happy Alternative Functional Youths라는 의미를 찾아 부여했다. 최종형인 만큼 나의 꿈이었던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 휘발성 강한 캐릭터산업계보다는 예술계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반짝하고 사라진 마시마로를 보라. (물론 그렇게 한시대를 풍미하고 공동의 기억으로 남는 것도 큰 영광이고, 의미있는 일이다만.)

2011년도에 일차적으로 짜임새가 있는 하나의 HAFY의 스토리를 만들었지만 투쟁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었던 당시의 내 철학이 고스라니 반영되었다. 현실부정적인 태도는 작품의 힘을 계속 실어나가기 힘들었다. 사실 그 시절은 반문명적인 생각으로 삶을 사는 의미 자체를 먼저 찾았어야 했다.

HAFY의 도자기 캐릭터를 만들었음에도 그것의 컨탠츠가 없는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2012, 2013년 2년여간은 문래동에서 도자기 작업에 집중하며 나의 새로운 조형 상징성을 찾아내고 내러티브없는 작업에 집중하였다. 도자기 작업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럴싸한 갤러리에서 초대전의 기회를 가졌고, 예술계의 언어방식을 몸에 익혀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영예까지 안았다. 모든 작품에 캐릭터성이 강하게 녹아있지만, HAFY라는 이름을 준 캐릭터 프로젝트는 잊혀져 갔다. 내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링크가 걸려있었고, 작년말 CA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HAFY캐릭터를 전개하겠다고 감정적인 계획을 밝혔다.

2015년도의 작업방향도 대체로 조형과 심미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잡혀있었다. 방향성은 확실히 캐릭터 산업보다도 예술계를 향해 있다. 하지만, 주머니에 숨겨둔 송곳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올해초의 Future Fab 워크샵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자극받고, Pictoplasma의 초대전을 준비하면서 다시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동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찾아와 확실히 발화점이 되어주었다. 철학에서는 상이한 차이가 있는 사람이지만, 내러티브로 승부하는 세계의 사람과의 대화는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그렇게 손 놓아두었던 HAFY를 다시 만지작 거렸고, 보다 상업적으로 예술적으로 가능성있는 형태로 가다듬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