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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Thought an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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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회고하고 2015년을 계획함에 앞서 풀타임 아티스트가 된 2013년부터의 회고가 필요할 듯 하다.

2013
2013년은 연초에 잡지 아트디렉팅 업무를 그만둔 뒤로 아티스트로서의 색깔을 다잡는 1년이었다. 1년 내내 차분하게 도예를 배웠다. 어느정도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던 10월 복합공간 1984에서의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 기획을 구체화하는 중에 소셜갤러리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았는데, 홍대와 삼청동의 다른 문화적 기반을 고려하여 거절하지 않고 같은 내용의 개인전을 연달아 치뤄버렸다. 홍대지역에서는 작은 소품 위주로 왕성한 판매가 이루어졌고, 삼청동에서는 비교적 고가의 작품이 판매되었다.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알려지고,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리는 시적점이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야겠다. 2013년은 그렇게 아티스트로서 색깔을 만들고 두번의 전시로 마감하였다.

2014
새해초 닥터박 갤러리에서 전시 제의를 받았다. 아티스트로서의 자립을 선언하고서 처음 받아본 상업갤러리의 전시제안이라 아티스트로서 꽤 고무되는 신호로 여겼다. 조금 거리가 있는 양평이라는 곳에서의 전시지만, 좋은 관광코스이고, 상업 아트콜렉터가 오너이므로 예술경제의 흐름을 익힐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전반기에 준비하여 5월의 전시에는 도자기에 더불어 페인팅을 강화하려고 계획했다.

2월에는 중소기업청의 사업지원 공모와 서울문화재단 기금을 고민하였다. 최종적으로 중소기업청의 사업지원은 포기하였다. 탄탄한 컨셉으로 제안서를 작성하여 꼭 선정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의 400만원 짜리 MEET프로젝트는 지원하여 선정되었다.

3월에는 신사동 애드립에서 ‘문구온더가구’ 그룹전시에 도자기 소품들을 전시하였다. 왕성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깊이를 만들어가던?4월경에 ABSOLUT City Canvas 프로모션의 제안이 들어와 아티스트들과 문래동에서 벽화작업을 하며 4~5월을 보냈다. 지역 예술활동에 디렉터로서 임무를 받고,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벽을 얻기 위해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주변 철공소 사장님들과의 관계도 확장되었다. 벽화작업과 촬영으로 한창 바쁘던 5월에 예정된 닥터박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치뤘다. 바쁜 일정으로 회화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를 어시스턴트로 기용하였는데, 시스템은 생각했던 것처럼 잘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했던 아크릴 페인팅은 디지털프린팅으로 대체했다. 개인전의 판매는 실망스러웠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지만, 상업갤러리인만큼 보다 왕성한 판매와 매체보도를 기대했는데, 욕심에 미치지 못했다. ABSOLUT의 벽화 작업도 아쉬움은 남았지만, 나의 100%를 다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다만 내가 만드는 이미지들의 한계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Onstyle의 <스타일로그>라는 프로그램 출연으로까지 이어졌고, 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계기였다. 폭풍과 같은 4, 5월을 보내고 7월에는 코엑스에서 펼쳐지는 핸드메이드코리아에 초대부쓰로 참가했다. 스타일로그가 방영되고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팬이라고 얘기해주는 분들이 건내는 인사가 반갑고 고맙고, 큰 힘이 되었다. 16000원 짜리 도자기 토이를 10000원에 할인하는 등, 판매촉진을 위해 힘써봤지만, 판매량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초대부쓰라고 한들 운송비도 들고, 프린트비용도 들고, 알바생도 쓰게 되고, 이래저래 돈이 든다.

8월에는 대안학교 학생(고등학생)이 인턴으로 1개월 동안 도와줬다. 인턴을 쓸 사정은 아니었지만, 업무체험 프로그램으로서 무급으로 일하겠다는 학생의 강력한 요청과 1년전 인터뷰를 통해 맺은 인연으로 어시스트업무를 수락하였다. <메이드인문래>프로젝트 준비도 임박하여 일을 나눠서 작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도 익숙치 않은 친구라, 나눠줄 수 있는 업무가 생각보다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육체노동 위주로 일을 분담시켜줬다. 그것만도 큰 도움이었지만, 그에게 가르켜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그의 삶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메이드인문래> 프로젝트의 메인 오브제는 몇번의 디자인변경을 거쳐 제일기공에서 주문했다. 형제목형을 이용한 알루미늄 주조 방식으로는 예산을 맞출 수 없었다. 콜라보레이터들과 협의를 하며 결론에 다가갔다. 여러 협업자들과의 진행은 쉽지 않다. 회사의 고용이 아닌 이상, 그들의 모티베이션은 돈 또는 저자성으로 고취시켜야 하고 적절한 선에서 결과물에 대하여 만족하여야만 한다. 한 회사의 팀처럼 푸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열정이 다르고, 말을 통해 서로가 꿈꾸는 결과물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시 준비 기간에 작업실 이전과 개인적인 사고가 겹쳐 창작의 텐션을 유지하기 힘겨웠다. 전시의 준비가 부족하다보니 퍼포먼스를 구상하기 어려웠다. 작품의 전체 설치가 정리될 즈음부터 퍼포먼스에 관심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고나니 3~4일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리허설 전날까지 섭외를 하여 결국 퍼포먼스는 워크샵 수준이 되어버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큰 실패없이 9월19일 <메이드인문래>를 설치, 공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준비가 미흡하다보니 손님 초대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로 인해 관객도 적었던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립현대미술관 분들이 들러서 작품을 본 것은 큰 소득이었다. 우연히 들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분들이 전시준비를 보았고, 공연날에 까지 다시 와서 봐주었다. 이분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그룹전시에도 초대해주었는데, 이는 아티스트 커리어로서는 또 하나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MEET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의 화두를 받고 작가로서의 새로운 씨앗을 낳았으니 진정 감사할 일이다.

이태원 공간으로 작업실을 옮기고서는 작업실을 안정화시키는데 또 다시 시간을 들였다. 청소를 하고, 화분을 사다놓고, 책상의 위치를 잡았다. 윗층에 갤러리가 있고, 아랫층에 작업실이 있는 구조인데, 갤러리 공간의 온라인 홍보와 사진촬영을 조건으로 작업실을 무료로 사용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갤러리의 업무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약속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0, 11, 12월은 급료를 받고 갤러리의 일을 도와줬다. 사연많은 공간이라 스트레스는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1월까지 지원 업무를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 세달 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업무와 팀원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즐겁긴 하다.?

2015년
1월에 에브리데이 몬데이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 White Mountain을 전시하고 있는데, 페인팅도 디스플레이도 영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에브리데이몬데이는 기회를 줬고, 내 준비가 부족했다.
2월16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사물학Ⅱ-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에서 <메이드인문래>를 선보인다.
4월말에는 Pictoplasma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다녀올 예정이다. 강연과 전시가 예정되어있는데, 페인팅을 명확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좋은 경력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찬스인데, 많은 것으로부터 쫓기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루마니아로부터 온 인터뷰 메일에 회신하지 않은 것부터가 문제.
9월에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초대되었다. 알랭드보통과 협의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인데, 공예가 염승일로 들어가있던 보도자료를, 현대미술가 염승일로 고쳐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것이 나의 현재의 정체성이 아닐까? 지난주 목요일 알랭드보통을 처음 만났고 9월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다. 2월 4월 9월 이 시간들에 대중과 미술계에 어떤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시간을 빗겨난 시간에 어떤 사업을 일으켜 또 어떻게 성과를 잘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숙제다.

3번의 굵직한 전시가 잡혀있다. 누군가는 분명 부러워할만한 이력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해외초대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 좋은 신호다. 항공료, 체류비까지 받으면서 해외에 전시초청을 받는 것은 내가 어렸을 적 꾸었던 꿈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직 불안한 경제상황이 숙제다. 내가 나의 이름으로 살고, 스스로가 업(業)을 일으켜 자립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올 한해 경제적인 압박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동시에 고민하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디자인이 가능한 아티스트 스튜디오로 다시 한번 변모해나갈 계획을 잡고 있다.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상의해야겠다.

2015년. 또 힘차게 삶의 진전을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