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Artworks, Thought and Life

Posts tagged introspection

yomsnil's 2015

YOMSNIL’s 2015

올 하반기는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전반기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와 픽토플라즈마 베를린에 관해서는 시간을 두고 의미있는 회고록을 작성해두었다. 하지만 하반기의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생각만큼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고, 광고회사에서 짧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긴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회고록을 꼭 작성하는 편인데, 타인의 잘못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알랭드보통 특별전
내가 콘트롤할 수 없었던 상황을 차치하고, 나의 실수만을 회고하자.

1. 사이즈
전시의 사이즈를 너무 키웠다. 전시 지원금을 십분 활용해서 공예다운 알찬 작업을 할 수도 있었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시된 커다란 벽을 보고는 작품 사이즈를 엄청 키워버렸다. 픽토플라즈마 베를린 전시를 진행하면서 제작한 Face Composition 시리즈에 스스로 만족감을 가진 것이 더 큰 이유였겠지만, 최종적인 벽의 높이를 알았다면 작품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작품 시리즈를 낳았기 때문에 작품 시리즈에 대해서는 총체적으로 만족감이 크다.

2. 작품의 설치
위험한 상태로 작품을 설치를 했다. 무거운 나무작품을 삼각대 위에 올려놨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옮기다가 작품이 떨어져 이마를 찌었다. 관객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후관계와 책임소재를 막론하고,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이다. 폭넓은 관객층이 방문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아찔한 실수였다.

3. 지방 전시에 대한 대처
가평 이후, 지속적으로 들러보기 힘든 거리에서의 전시는 처음이었다. 1박2일간 설치를 하고 오프닝 당일 아침에 또 설치를 했지만 완성도가 부족했다.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관리해야 하는 환경 구성 전시는 완벽한 사전 설치와 메인터넌스에 대한 가이드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확보해 두어야겠다.

4. 에너지의 관리
작품 제작 아카이브에서 그들이 원했던 양식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더 좋은 스케치 작품이 많았음에도 볼품없는 A3용지 한 장을 건냈을 뿐이었다. 기획자와의 트러블로 사기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공개되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이름이다. 확실히 나를 보여주는 모든 결과물은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렸어야 했다.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봐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공예비엔날레에서 작품봤다는 사람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창피하던지… 작가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다져야할 순간이었다.

공원 조형물 의뢰
<사물학2: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를 관람했던 조경회사 대표로부터 수원의 한 공원을 위한 조형물 제작의뢰를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탈락했지만 조형물의 의뢰를 받아 본 것은 나름 흥미로운 지속가능성의 발견이었다.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좋은 기획서를 만들지 못했다. 조형물, 회화, 프로젝트와 같이 각각의 포트폴리오를 미리 준비해두고, 다음에 이와 같은 건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미팅을 주도해야겠다.

슈퍼콤마비 2016 S/S 콜라보레이션
브랜드에서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때는 예술기획사이나 광고기획사를 끼고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슈퍼콤마비 마켓팅팀이 프로젝트를 직접 콘트롤 하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예술기획자이자 예술가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마켓팅 담당자를 도와 2016년 전반기에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엘로퀀스 매거진에서의 프로젝트 기획이나, 올해 일했던 예술광고기획 회사에서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키워 더 큰 부가가치를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하고, 더 많은 금액을 받아내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태도이다.

평창올림픽 그래픽모티브 전시
유수의 그래픽디자이너들과 함께 한 자리로서 참여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전시였다. 밀도를 더 높일 수도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다소 남는다. 아트를 흠뻑 즐기고 다시 돌아와선 그래픽 디자인! 더 부지런히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안국약품 갤러리AG 전시
12월에 찾아온 행운이다. 샐리에게 소개받아 함께 2인전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년간의 예술 프로젝트 경험을 살려 샐리와 깊게 대화나누며 전시의 톤을 상의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남았던 아쉬움과 새로운 발견들을 다시 정리하여 샐리의 항기와 함게 유감없이 펼쳐보일 수 있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70%를 보여줬다면, 갤러리AG에서 100%를 다 이끌어낸 셈이다. 갤러리AG의 큐레이터는 나의 모든 시도를 가능하게 허락해주었다. 매주 전시가 바뀌는 컨셉에서부터 심지어 케이터링을 직접 만드는 모험까지도! ^^ 나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갤러리를 자주 방문하며 나 스스로가 전시를 즐겼고, 전시장의 환경을 챙길 수 있었다. 늘 관객들에게 최선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챙기니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하고 방문을 기다릴 수 있었다. 오프닝에서 음식준비에 내가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것은 잘못이다. 나는 더 많은 관객들을 맞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인맥을 넓혔어야 했다. 물론 칵테일을 만들어서 부어주며 모두와 인사할 수 있었지만, 너무 바빴다. 이목구비를 보여주는 전시의 컨셉은 제약회사의 특성과도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콤프레셔, 타카, 각도절단기를 완비하였다. 이제 모든 목공설치를 스스로 할 수 있다. 목수를 적절히 활용해야겠지만,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올해는 순수하게 작품 판매로 국내외에서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만들었다. 아직 태부족하지만, 2016년에는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실을 거점 삼아 스스로 경제구조도 만들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을 더욱 많이 만들어야겠다.

2015년을 돌아보면 부동산 분쟁도 옆에서 지켜봤고, 나 답지 않게 분노를 못이겨 유리병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ㅎㅎㅎ 세상에. 2015년 초에 이태원을 떠나고 독일에 다녀오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상당히 분절된 느낌이다. 2016년을 여는 지금은 평화롭고, 희망적이다. 돈이 있으면 내 꿈을 위해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남의 꿈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현실이다. 내 꿈을 위해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궁색하게 살자. 현실을 고민하고 더욱 진실하게 살아보자.

2014.10~2015.1

지난해 새로운 작업실을 알아보던 참에 일전에 전시를 했던 갤러리 오너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새로운 아티스트 임대공간을 만들고, 갤러리 겸 카페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2년간의 전업아티스트 생활로 경제적 압박이 있었던 터라, 나는 그들의 SNS홍보와 작업실 관리를 조건으로 그들의 공간에 입주하기로 하였다. 아티스트로서 제작 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공간 구성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9월 작업실이 완성되고 제일 먼저 이사를 했다. 입주를 하고 났더니 갤러리와 카페 쪽의 업무 진행이 지지부진하여 페이스북에 업로드할만한 컨텐츠조차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업무 방식에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내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제의했다. 그렇게 스페이스한남에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업무를 시작했다.

나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스페이스한남의 영업이익 개선을 위한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 대표와 1명의 디자이너, 2명의 사무직원과 함께 일했다.

1. 청소
이틀에 한번은 스태프들과 공간을 청소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미화원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작은 회사들은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유리를 닦았다. 에폭시로 코팅한 바닥은 물걸레질이 아닌 왁스걸레질이 적당했다. 스페이스한남은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곳으로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다. 잠깐 사이라도 손님이 나쁜 인상을 받지 않도록 화장실이던지, 계단이던지 쓰레기가 보이면 곧바로 치우도록 팀원들을 독려했다. 해결해야 할 독특한 건축적 문제도 있었다. 디자인웍스빌딩은 6층짜리 건물로 스페이스한남은 뒷쪽에서 올라오면 5층, 이태원로 쪽에서 보면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1층에는 레스토랑 2개 점포가 있고, 별도의 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곳에 일하는 종업원들은 스페이스한남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건물의 뒷마당으로 여기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곤 했다. 주차장이 있는 진정한 뒷마당은 계단으로 4개층을 내려가야만 하니 흡연자로서는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님이 우리 카페를 들어오려면 담배꽁초와 가래침으로 뒤범벅이 된 바닥을 지나와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매일 아침 관리인이 청소를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나는 위트있는 금연 표지판을 만들어 붙이고, 해당장소에서 흡연자를 만나면 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상습흡연자를 만나면 인상을 쓰며 혼내기도 했다. 관리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했다. 토요일, 일요일은 스페이스한남 매장 스텝이 청소를 하도록 정례화시켰다. 물론 나도 함께 참여했다. 건축적으로 영구적인 해법을 구상하기도 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실행할 수는 없었다. 완벽히 해결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관심을 쓰고서 많이 깨끗해졌다. 청소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행위다.

2.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네이버 시절과 웹사이트 운영 경력을 살려서 업체의 SEO를 개선하였다. 주요수입원이 공간대여였으므로 검색사이트에 ‘이태원’, ‘대여공간’, ‘파티’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될 수 있도록 태그와 본문을 작성하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기존의 신사 지점에 비해 검색 결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음을 증명해보였다. ‘공간상회’와 같은 공간 중계 사이트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구글맵에도 등록하고, 네이버 지도도 변경 등록했다. 공간은 숍인숍으로서 3개의 브랜드가 더 입점해있었다. 숍인숍으로 들어와있는 브랜드들의 평균 인지도가 훨씬 높은 상황이었다. 공통으로 정한 장소의 이름, ‘스페이스한남’으로 모두가 기사를 내는 것이 온당한 일이었는데, 이해관계 속에서 주소와 각자의 이름 + 쇼룸의 형태로 주소를 냈다. 아쉬운 부분이다.

3. 각종 디자인
대학교 4학년 휴학 중인 1명의 인턴디자이너와 함께 일했는데,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초안을 잡아주거나, 디자이너의 작업방향을 교정해주었다. 소량인쇄가 많다보니 인쇄는 대부분 성원애드피아에서 인디고 인쇄로 출력하였다. A3 사이즈의 접이식 브로셔는 적은 가격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4. 할로윈 파티와 전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내가 중심축이 되어 할로윈파티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전시 가능한 스튜디오의 작가와 나의 인맥을 동원하여 작가군을 구성했다. 할로윈파티를 위한 특별 화보를 촬영하고 포스터 이미지를 이태원 일대에 붙였다. 안주와 칵테일의 종류를 함께 정하고, 고유번호가 적힌 초대권 JPG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스페이스한남의 오프닝 파티로서 당일로부터 한달간 작품을 전시했다. 그림을 모으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계약서나 보관증도 필요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DJ가 와서 음악을 틀고, 칵테일을 팔고, 특수분장을 해주는 파티였는데, 중간중간 더 섬세한 볼거리가 필요했다. 혼자서 온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모든 행사와 시간 마다 숍인숍 업체와의 트러블이 내내 있었다. 이 파티도 전날에 카페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불투명하여 파티의 완성도를 높여야 할 시간에 필요없는 에너지를 소모했다.

5. 공간대여
행사를 위해 공간이 필요한 회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웹에서 검색해보고 오는 것이 보통이다. 전화로 많은 것을 물어보는 편이지만, 공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와서 보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와서 보고 판단하도록 유도했다. 보고나서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그들은 공간을 대여한다. 몇번이고 전화하고 방문도 하지만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는 건 수는 20% 정도다. 나는 AV장치, 마이크, 카페, 화장실, 조명 등의 정보를 전달하여 그들이 미리 예측가능하게 하고 그들이 행사를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행사 중에는 화장실 청소와 서빙도 마다하지 않았고, 기계에 대한 이해가 늘면서 나는 그들의 돌발상황의 문제들을 즉석으로 해결해주었다. 행사 후에 고마웠다는 인사를 들을 때 보람이 있었다. 나는 매번 행사를 마치고 나면 후기를 작성하여 행사 대응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여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보고, 만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대여 이벤트의 손님으로서 지인을 만나는 경우도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카운터에서 맥주를 따라주는 것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재미있었다. 몰려드는 손님을 맞는 것. 내가 따라주는 술잔에 의해 즉각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서비스업종에 별로 있어보지 않았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고, 돌봐주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대여이벤트는 흑인음악동호회(1000명), 소니뮤직코리아(40명),  IT 신제품 발표회(50명), 크리스마스 리빙제품 전시, 리빙디자인과 졸업전시, 연말 회사 파티(90명) 등을 유치하고 행사 진행을 도왔다.

6. 예술기획
스트리트 씬에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몇가지 번득이는 예술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끝내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산에 따라 구체적인 집행일자와 방법, 스탭까지 구성한 기획서를 1부 제작했고, 개념을 설명한 기획서를 2부 제작했다.

7. 장비구매
최소비용으로 최대비용을 낼 수 있는 각종 물품을 구매했다. 카페 체어, 테이블, 포토 스크린, 전동공구 등.

8. 사이니지
건물외내에 필요한 사이니지를 디자인하고 부착했다. 시간 안에 원하는 마케팅 효과가 있다면 그것에 맞추어야 한다. 내가 한 디자인이 좋냐하면, 좋다고는 못하겠다. 여유있는 예산을 가지고 세련된 감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얌전히 천천히 갈 수 있다. 투자금회수를 빠른 시점에 원한다면 더 강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자본과 선택의 문제다.

9. 문서화
모든 문서는 구글문서로 작성하여 공유하였다. 신입사원의 오리엔테이션부터 구글 스프레드시트 한장 읽어보면 파악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람이 바껴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문서화하였다. 컨택포인트와 대여공간을 이용한 거래처도 표로 만들었다. 매번 행사를 치루고 나면 회고를 통해 잘된 점과 매끄럽지 못한 점을 기록해 공유했다.

10. 인력관리
대표가 LINE으로 스케쥴관리를 할 것을 제안해주었다. 매일 들고다니는 핸드폰에까지 업무를 푸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신세대의 커뮤니케이션 툴이자, 휴대용 컴퓨터는 좋은 관리도구였다. LINE에 하루, 하루 회고를 올리면 각 스탭은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출근시간 – 업무 수행 정도(협업자) – 퇴근시간 – 겪고 있는 업무상 문제 – 내일 할일 등을 적어서 작업은 상태를 공유하도록 했다.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먼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은 지금의 회사에서도 내가 제안하여 실험하고 있다.

더 자세한 회고는 다른이를 탓할 수 밖에 없으니 이 정도로 회고를 마치겠다. 숍인숍과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처리할 수 없는 분쟁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나의 순간들과 작은 회사와 공간의 리더로서의 값진 경험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그 때의 고생은 그 당시에 받았던 소정의 급료와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국한 된 일을 조정하는 사람을 아트디렉터라 하고, 공감각에 관련된 일을 조정하는 사람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한다. 이미 ELOQUENCE매거진 때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을 했지만, 한남동에서 디렉터로서의 조정능력, 위기 대처능력이 대단히 성장했다. 앞으로도 좋은 돈벌이를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이브닝 파티
11년간 행사를 이어온 만큼 그들의 원숙한 운영에 매순간 감탄하게 된다. Urban spree에서의 전시와 Silent Green에서의 전시, Babylon에서의 렉쳐와 Platoon에서의 워크샵과 행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어느 것도 놓치기 싫은 기분이었다. 금요일은 나의 렉쳐를 마치고 난 직후라서 많은 외국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나의 렉쳐를 칭찬해주었고,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국내외를 떠나 이렇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롹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Friends of Pictoplasma in Platoon Kunsthalle

Very talented Friends of Pictoplasma in Platoon Kunsthalle

사람들
Peter와 Lars는 총기획자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Platoon과 Kino Babylon, Silent Green을 바쁘게 오가며 전체 상황을 체크했다. 나의 렉쳐는 Peter가 지켜보고 격려해주었다.

Danielle는 Silent Green갤러리의 전시 전체를 책임지고 관리했다. 특히 둘째날 오프닝 다음날 아침일찍담배꽁초를 줍는 Danielle를 발견했다. 나는 함께 갤러리 앞의 담배꽁초를 줍고, 먼지를 밀대로 밀었다. 스페이스한남 시절의 일상이 떠올랐다. 청소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행위다. 나의 적극적인 모습에 그녀는 감사해했고, 나 역시 전시 관련 행사를 꼼꼼하게 진행한 그녀의 활약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Ma Mommy라고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지막날에는 나의 작품을 구매하고 직접 가지러 스페인에서 온 콜렉터 데이비드 칸톨라(www.kgervas.com)를 만났다. 그는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한 사업가였고, 몇년전부터 예술비즈니스에 뛰어든 훌륭한 콜렉션을 가지고 있었다. 완판에 가까운 제품 판매를 했지만, 그가 작품을 세점이나 사주는 바람에 이번 투어가 완벽해졌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작품을 판매한 적 있었지만, 직접 구매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보다 세련되고 능숙하게 콜렉터를 대하고 싶었지만, 짧은 나의 영어와 대화능력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런 나에 비해, 능숙하게 화제를 꺼내어 대화를 이끌어가는 Nathan Jurevicius형님은, 역시 멋있었다. 목소리도 좋고!

Tristan은 워크샵을 관리하였고, Laure는 강연자들의 교통과 숙소 및 강연일정을 관리했다. 둘다 젊은 스탭으로서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았다. 준비시간부터 생각하면 일주일간 내내 긴장의시간이었을텐데 Pre picto party 때부터 나의 어눌한 발음과 긴 대화시간을 참고 신경써 들어주며 나를 편하게 대해주었다.

Akinori Oishi형님과는 아주 편해졌다. Mr KAT의 페루공장에 놀러가고 싶어졌다. Hikari Shimoda는 영감을 주었고, Nadine과 Tado는 늘 밝은 미소를 나를 맞아주었다.

Characterpillar, 그들은 학생들과 함께 픽토플라즈마를 방문했다. 그들의 뉴캐슬의 방언은 경계씸을 무장해제시킨다. 뉴캐슬은 가보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가 되었고, 마지막날 유니클로에서 Aki티셔츠를 찾아 그들과  함께 오른 Spree강 보트 투어는 베를린의 가장 좋은 추억 중에 하나가 되었다. (https://vimeo.com/120875872)

Characterpilla

Spree river cruising with Characterpilla

Last day
마지막날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모두에게 이별을 고하며 한명씩 포옹을 나눴다. 멘탈甲인 내가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중고로 샀던 자전거는 그 값 그대로 Peter에게 팔았으니, 돌아가는 길은 부슬비를 맞으며 대중교통을이용했다. 베를린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다음날 커다란 짐을 싸서 암스테르담 행 버스(http://meinfernbus.de/)에 올랐다. (30 euro, 예약은 안하는 것이 더 좋다.) 10시간의 버스여행은독일과 네덜란드의 시골 풍광을 바라보며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되새김하기에 좋은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하나의 모험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초대와 애정에 힘입어 나는 이제 더 큰 다음 모험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Thank you for all.

Pictoplasma Berlin 2015 Group Exhibition @ Silent Green Gallery

Pictoplasma Berlin 2015 Group Exhibition @ Silent Green Gallery

Silent Green Gallery -photo by (c)Pictoplasma

Silent Green Gallery -photo by (c)Pictoplasma

Haircut in Turkish Barber,  Berlin

Haircut in Turkish Barber, Berlin

이발
전시준비를 마치고 이제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컨퍼런스위크의 시작이다. 아침엔 명상적인 분위기의 Liquid rom에서 남녀혼탕 사우나를 2시간동안 즐겼다. 명상음악과 함께 맨몸으로 즐기는 스위밍풀의 미디어아트가 환상적이었다. (http://www.liquidrom-berlin.de/de/musik.php) 사우나로 아시아인다운 뽀얀 살결을 되찾고서 마땅한 이발소를 찾아 나섰다. 면도까지 부탁하고 싶어서 헤어숍이 아닌 이발소를 찾았는데, 결국 돌고 돌아 숙소 옆의 터키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깍았다. (검색이 만능은 아니로구나.) 터키이발소에서는 실을 이용해서 잔털을 뽑는다던지 불방망이로 귓속의 솜털을 정리하는 등 처음 접해보는 방식들이 신선했다.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팁문화에 익숙치 않았던 탓에 20유로의 요금외에 팁은 지불하지 않았다. 미안!

Pre Picto Welcome Dinner
행사에 앞서 저녁 모임장소로 향했다. 함께 전시를 하는 많은 창작자들을 행사 하루전 만나는 시간이었다. 열흘 먼저 베를린에 도착하여 생활하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히카리시모다와 아키노리 오이시를 만나 일어로 대화하는 것이 여전히 더 편하긴 했다. 히카리 시모다는 LA출신의 에이젼트와 동행했다. Scary Girl의 Nathan Jurevicius와도 만났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좋은 작업을 만들었고,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파티라는 것에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술의 기운을 빌어 많은 창작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Tado, Hikari Shimoda, Shobo Shobo, Laure, Johanna Keimeyer, Nathan Jurevicius, Akinori Oishi,

Tado, Hikari Shimoda, Shobo Shobo, Laure, Johanna Keimeyer, Nathan Jurevicius, Akinori Oishi,

Exhibition Opening Day
와~ 손님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Pictoplasma 킹왕짱!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나는 Mr. KAT과 Hikari Shimoda의 완성도 높은 마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의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위치한 나의 캔버스 작업들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연출했다. 나의 팬이라며 사인을 요청한 미국에서 온 관객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역시도 Urban spree에서 Pictoplasma전시에 참여한 훌륭한 창작자였다. 그렇게 많은 관객들이 Character based art의 애호가이자, 동시에 창작자였다.

Pictoplasma-opening

Pictoplasma exhibition opening

Conference Lecture
나는 어렷을 적부터의 나의 그림들과 클라이언트 작업을 통해 구축해온 나의 저자성에 관한 강연을 했다.

잘한 것: 떨지 않은 것, 진솔한 내용.
잘 못한 것: 프리젠테이션을 보다 이쁘게 만들지 않은 것, 미리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완성하여 페이지를 조화롭게 만들지 못한 것, 시간배분을 정확히 하지 못한 점, 표현하고 싶은 것을 영어로 다 말하지 못한 것.
다른이의 의견을 빌리자면 어느 렉쳐보다 즐거웠고 신선했다고 한다. 박수도 많이 나왔다. HAFYRAMA를 보여주고 났을때는 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나도 다른 렉쳐를 들어봤으니까 객관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로서,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그대로 들어낸 것도 좋은 호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일테니까 말이다. 신선한 렉쳐였다지만, 이렇게 귀여운 렉쳐를 두번 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갈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 보일테다.

YOMSNIL in Pictoplasma Berlin 2015

YOMSNIL in Pictoplasma Berlin 2015

Audiences of my Pictoplasma lecture

Audiences of my Pictoplasma lecture

제작
마음씨 좋은 Silent Green 사람들은 아직 임대되지 않은 지하층을 작업장으로 내어주었다. 숙소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작품을 넓게 펼쳐서 바라보면서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 Modular에서 한차례 물감을 구입하여 썼는데, 작업장과 가까운 베딩의 peters art supply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물감과 붓을 사서 썼다. 이것도 다 네트워크(=구글)의 힘이다. 구글맵에서 검색을 못했다면, 30분이나 걸리는 미떼 지역의 Boesner에 다녀와야 했을 것이다. 붓칠의 질감을 보다 살리고 싶어서 heavy gel을 구입하였고, 꽤나 크고 두꺼운 붓을 샀다. 두꺼운 붓은 물감과 물의 낭비가 심하다. 붓을 빨때마다 지구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눈의 그라데이션 표현은 세차례 수정을 거듭하여 완성했다. 페인터리한 느낌을 주려고 했는데, 사실 내가 페인팅에 능숙한 편이 아니라 고생을 했다. 더욱 분발할 것.

Process of Big Wall; Two Faces Composition

Process of Big Wall; Two Faces Composition

마감
바니쉬를 바르기 전에 반드시 붓이나 콤프레서로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데, 페인팅을 끝까지 수정하다가 급하게 마감을 하느라 이번에도 제대로 절차를 밟지 못하고 바니쉬를 발라버렸다. 페인팅을 완성할때는 콤프레서, 붓, 쪽집게를 늘 잊지말자. 마감은 최소 이틀을 잡아두어야 하고 날씨와 습도에 따라 시간을 연장하여야 한다. 도톰한 두께와 깊이감을 내기 위해 한국에 돌아가면 레진코팅 마감을 테스트해보고 사용하고 싶다. 레진의 경우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자.

Process of Big Wall; Two Faces Composition

With Danielle and Installation team

With Danielle and Installation team

설치
출발 전에 Danielle와 얘기했던 사양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우선 자작나무합판(Birchwood Plywood) 6mm로 나무판넬을 만들기를 원했는데, 최경량의 나무소재로 대체되었다. 가벼워서 매달기는 편하지만, 작품으로서 중량감이 부족한 것은 아쉬움이 남았다. 벽면도 메일을 통해 전해들은 상황과 다르게 값비싼 음향흡수 벽이어서 못을 박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설치디렉터였던 나디아는 최종적으로 플라스틱와이어와 고리로 해결을 했다. 그 과정에서도 나와 계속 협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다. 뒷면에 플라스틱고리를 설치하기 어려운 캔버스도 있었고, 사다리의 높이도 상당히 높아서 스텝들의 스트레스가 꽤 높았던 순간이었다. 모두들 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Pictoplasma Portrait 2014

Pictoplasma Portrait 2014

연결
Pictoplasma는 내가 대학생 시절 즐겨보았던 character based art에 관한 출판사이자, 그와 관련된 교육과 행사를 주최하는 곳이다. 어린 시절 그들의 책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그들의 책에 실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CA기사
(http://cakorea.com/archives/3357)

작년 도자기 작품들이 어느정도의 라인업을 갖추었을 즈음 나는 그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세지를 보내 나의 작품과 홈페이지를 소개했다. 그들은 나의 작품을 좋아해주었다. 페이지에 소개해주는 것은 물론, 2년만에 발간된 그들의 작품집에 실어주었다.

컨퍼런스의 초대와 준비
그에 더불어 그들은 나를 2015년의 Pictoplasma 그룹전시와 강연자로서 초청했다. 반년전에 미리 보낸 그들의 메일은 무척 정중했고, 경비도 전액 지원해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긍정적인 결실을 만들어 내고자, 제공해주는 호텔 숙소를 저렴한 플랏쉐어로 낮추고 체류기간을 늘려 그 기간 안에 전시에 꼭 맞는 페인팅 작품을 만들어내기로 역으로 다시 제안했다.

Peter와 Lars의 초청 메일을 시작으로 전시에 관하여서는 Danielle, 여행에 관해서는 Laure와 메일을 주고 받았다. 특히 전시의 구성과 작품의 운송에 관하여 Danielle와 50여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들은 전시가 펼쳐질 Silent Green갤러리(http://www.silent-green.net/)의 사진을 보여줬다. 1911년 건축되어 화장장으로 쓰였던 건물로서 삶을 마감하던 비장미 있는 장소에서 귀엽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상반된 재미로 느껴졌다. 나의 열의를 확인한 그들은 메인홀의 큰 벽을 나의 그림으로 꾸며볼 것을 제안해주었다.

images with our email, Danielle and me

images with our email, Danielle and me

나는 기존의 원형 캔버스 작품들과 CNC컷팅으로 만든 우드판넬로 커다란 얼굴형상을 만드는 시안을 보여줬고, 그들은 그것을 좋아해주었다. 도자기는 협의 끝에 컬러풀한 작품 2점과 유약으로 마무리한 작품 3점을 보내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몰드 생산제품은 50여점을 보내기로 했다. 배송은 상당히 번거롭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작품이 깨지지 않도록 포장해야하고, 송장도 만들어야 한다. 운송료는 10kg 박스 2개를 합쳐 200-250유로 선이었다.

sending porcelains by fedex

sending porcelains by fedex

여행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CA강연을 마치고 그날밤 나는 인천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여 13시간만에 테겔공항에 도착했다. 테겔공항은 수도 베를린의 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단촐한 크기였다. 특히 출국장은 국내의 지방공항보다 작고 낡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Laure는 택시를 잡아 나를 숙소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심카드
공항에 내려 Laure와 통화하기위해서 로밍을 조금 썼을뿐인데 금새 1만원의 로밍 사용요금이 청구되었다. 그래서 Lyca mobile의 simcard를 사서 꼽아썼다. 사용기간 중에 하루 동안 불통으로 말썽을 피우기도 했지만, 1일에 9000원인 데이터로밍보다 어쨋거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2기가, 30유로) 모바일인터넷이 끊겼던 시간에 나는 나의 총명함도 빛을 잃어버렸다. 약속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물론, 대화 중에 모르는 것을 검색하거나, 새로 만난 상대방 작가의 작품을 곧바로 검색하여 감상하는 일련의 나다운 커뮤니케이션 역시 방해를 받았다. 이제 인터넷이 두뇌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전거
플랫쉐어를 해준 황박사가 많은 것을 도와줬다. 그가 검색해준 Frankfurter Tor의 중고자전거 판매점(http://www.bikeparkberlin.de/)에서 190 euro를 주고 알맞은 중고자전거를 샀다. 체인롹 40 euro, 점등장치 10 euro,  타이어 교체 70 euro 등을 추가로 들였다. 렌탈자전거보다 내 몸에 딱맞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영어 네비게이션 보이스를 들으면 목적지를 찾아가면 초행길도 두려울 게 없었다.

190 euro used bike

190 euro used bike

다음날 베딩의 픽토플라즈마 사무실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전시장을 살펴봤다. 나의 이미지로 전시포스터가 제작되었다. 물론 미리 협의를 거쳤는데, 나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여러가지 버젼이 있는 줄알았다. Form Follows Empathy이라는 전시타이틀에 꼭 들어맞어서 나의 이미지로 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Peter가 설명해주었다.  행사가 다가올수록 거리에서 나의 포스터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와!

Pictoplasma staffs, poster of the event

Pictoplasma staffs, poster of the event

아직 fedex로 붙인 도자기도, 독일에서 재단한 CNC우드컷팅도 모두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금토일은 3일 짜리 뮤지엄패스를 끊고 베를린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현대미술과 고전들, 그리고 강렬한 스트리트아트와 그래피티가 번갈아가며 눈과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museum pass touring

museum pass touring

 

http://yomsnil.com/retrospection-24-pictoplasma-berlin-2015/

http://yomsnil.com/retrospection-34-pictoplasma-berlin-2015/

http://yomsnil.com/retrospection-44-pictoplasma-berlin-2015/

메이드인문래 퍼포먼스 리허설 장면

발굴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미 제작문화 씬에서 이름이 알려진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다른 차원의 미술영역에 있는 신인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번 전시를 통해 발굴되었다랄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손주영 연구관과 이현주 학예사는 작년가을 청개구리 제작소를 방문하기위해 문래동에 들렀다가 문래예술공장 studio M30에서 내가 준비 중인 ‘메이드인문래’의 리허설 광경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본 공연날에도 와서 확인해주었다. 흔쾌히 제3전시실의 제일 넓은 입구에 자리를 잡아 나를 초대해주었다. 2014년의 메이드인문래는 여건 상 조촐한 홍보와 단 하루만의 공연 밖에 치룰 수 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방문은 최고의 성과였던 셈이다. 2014년 9월에 치뤘던 메이드인문래 전시를 5개월 만에 다시 준비하면서 더욱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조형물을 몇가지 보완하여 추가하였고, 문래동 수집품으로 만든 천근성 작가의 작품을 함께 배치했다.

운송
이삿짐을 싸듯 작업실 식구들과 전날 내내 함께 포장을 하여 1톤트럭을 불러 작품을 옮겨 설치했던 것이 첫번째 전시의 작품운송 방법이었고, 갤러리의 운송업체가 그림을 걸어주고, 전시 종료 후 내가 쌌던 포장방법 그대로 다시 포장하여 반송받았던 것이 두번째 전시의 운송경험이었다. 이번에는 5톤트럭으로 3명의 경험풍부한 스텝들이 작품을 싣고 포장하여 옮겨주었다. 운송면에서 나는 별로 힘 들일 것이 없었다. 작가로서 더 대우받고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문래예술공장 앞에 놓여 있어서 studio M30으로 손쉽게 굴려?가지고 들어가 사용했던 원형 철파이프를 지게차를 불러 들어올려 옮길 때는 대단한 조형작가 된 기분도 들었고, 또 이렇게 애써 옮기는 것이 그 곳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의미를 발휘하게 될까 자문하는 계기도 되었다.
20150202_105954

미술관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영광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내가 어렸을 적 빈번하게 들르며 미술가의 꿈을 키워왔던 곳이라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미술관은 늘 완성되어 나를 맞이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완벽하고 정숙을 요구하는 공간에 아침부터 출근하여 설치를 하고, 밥을 먹고, 미술관의 창고에 내 짐을 두고 작업을 하다보니,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중압감을 깨고 온전히 나의 작업장으로 느끼게 되었다.

지역성
사실 문래동을 문래동의 예술시설에서 보여줬던 첫 전시보다 문래동을 과천의 산 속 미술관에서 풀어 재현해놓는 것이 오히려 미적 가치를 살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를 할때는 전시장에 들르기까지 관객이 경험한 것을 전시장에서 곧바로 재경험하게 하니, 감각의 재현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할 수 있겠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숲을 걷는 동안의 고요함과 문래철공단지의 소음이 대비를 이뤄 그 간극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부담
이전의 첫번째 사물학 전시의 내 자리엔 이정재, 임수정이 주연한 전준호, 문경원 감독의 ‘세상의 저편’ 영상작품이 있었다. 연구관은 이번 전시에서 ‘사물’을 더욱 날 것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만, 날 것도 그 정도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전 전시에 뒤지지 않겠다는 부담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빠르게 설치하고 빠지려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또 많은 시간을 전시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태원 공간에서의 아트디렉팅 업무에서 손을 뗀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다. 작품을 옮기고, 설치하고, 텍스트를쓰고, 문래동의 영상을 찍고, 퍼포머를 섭외하고, 안무를 짜고, 퍼포머와 함께 연습했다. 어떻게 보면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이지만, 버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버거웠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위로한다.

메이드인문래 퍼포먼스 플랜

업그레이드
지난 전시에 비해 일찍 퍼포머를 찾아나섰다. 지난번에 협연했던 임은조가 이번에도 함께 했고, 댄싱9에 출연했던 이루다, 이루마 자매가 흔쾌히 참여하면서 퍼포먼스의 구성을 편하게 풀 수 있었다. 임은조와 이루다 자매가 각각 한번씩 미술관에서 오브제와 함께 연습을 했고, 셋이서 한번 협동 연습을 했다. 총 30회 정도 춤을 춘 것 같다. 첫 연습에서는 음악에 맞춰 자유 율동을 주문했다. ?첫날의 연습을 통해 출연자들이 음악을 제대로 외웠고, 나는 음악시간에 따른 시공간 플랜을 알기쉽게 그래픽으로 제작하여 공유했다. 출연자들이 음악을 외운 덕에 두번째 공동연습부터는 무용의 스피드와 무용할 때의 신체모양을 세심하게 조율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번째 연습을 마칠 즈음에는 철물을 두드리는 방식과 박자를 결정했고, 마지막날에는 두드리는 음색을 아름답게 내는 방법과 관객동선을 고려한 퇴장의 방법을 결정했다. 마지막 비디오에서도 철물을 때려서 내는 소리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특별한 실수 없이 완벽한 공연을 만들어 냈다.

설치과정 및 숙제
메이드인문래는 2014년의 공연에서부터 바닥에서 빛을 쏴서 벽에 오브제와 퍼포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고, 그 시각적인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익숙치 않은 큰 그림자는 사람을 압도하며 스펙타클을 만들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5개월이라는 긴 전시기간과 미취학아동까지 아우르는 넓은 관객층이 제약요소였다. ?원래의 아이디어대로 바닥에 조명을 설치할 경우, 전선이 바닥에 드러나는 단점과 관객의 눈부심, 어린이 관객의 사고위험이 있었다. 일반 갤러리였다면, 원안대로 끝내?조명을 시공했겠지만, 공연 시의 조명 설정과 전시 시의 조명 설정을 달리하는 것으로 협의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장상황에 따라 스크린의 위치를 벽에서 스크린으로 바꿨다. 추가로 2장의 스크린을 요구했고, 미술관측은 최초에 족자형태의 스크린을 설치했다가 더 깔끔한 폼보드로 교체해주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해 포기했던 순간에 더 좋은 해결책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아직 전시장 안에서 텍스트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숙제다. 텍스트를 실크스크린으로 전사하고 싶었지만, 여건 상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트작업으로 타이틀과 년도, 작가명만을 표기하는 것으로 정해졌고,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비해 나는 이미 많은 캡션을 요청한 상태였다. 나는 텍스트에 애착이 많은 편이다. 전시 조형물만으로 감흥을 주는 맛도 있겠지만, 나의 작품은 텍스트로 그 의미가 강화된다고 생각한다. 접는 팜플렛이나 포스터 가변형도 생각하고 준비해봤지만, 오프닝 시간에 앞서 제대로 디자인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오픈을 하고 둘러보니 유인물이 많아서 나마저 유인물을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최선의 방법으로 텍스트를 보여주는 방식을 결정해야겠다.

아직 완벽한 회고를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이렇게 텍스트로 정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할 시점이다.

2014년을 회고하고 2015년을 계획함에 앞서 풀타임 아티스트가 된 2013년부터의 회고가 필요할 듯 하다.

2013
2013년은 연초에 잡지 아트디렉팅 업무를 그만둔 뒤로 아티스트로서의 색깔을 다잡는 1년이었다. 1년 내내 차분하게 도예를 배웠다. 어느정도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던 10월 복합공간 1984에서의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 기획을 구체화하는 중에 소셜갤러리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았는데, 홍대와 삼청동의 다른 문화적 기반을 고려하여 거절하지 않고 같은 내용의 개인전을 연달아 치뤄버렸다. 홍대지역에서는 작은 소품 위주로 왕성한 판매가 이루어졌고, 삼청동에서는 비교적 고가의 작품이 판매되었다.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알려지고,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리는 시적점이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야겠다. 2013년은 그렇게 아티스트로서 색깔을 만들고 두번의 전시로 마감하였다.

2014
새해초 닥터박 갤러리에서 전시 제의를 받았다. 아티스트로서의 자립을 선언하고서 처음 받아본 상업갤러리의 전시제안이라 아티스트로서 꽤 고무되는 신호로 여겼다. 조금 거리가 있는 양평이라는 곳에서의 전시지만, 좋은 관광코스이고, 상업 아트콜렉터가 오너이므로 예술경제의 흐름을 익힐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전반기에 준비하여 5월의 전시에는 도자기에 더불어 페인팅을 강화하려고 계획했다.

2월에는 중소기업청의 사업지원 공모와 서울문화재단 기금을 고민하였다. 최종적으로 중소기업청의 사업지원은 포기하였다. 탄탄한 컨셉으로 제안서를 작성하여 꼭 선정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의 400만원 짜리 MEET프로젝트는 지원하여 선정되었다.

3월에는 신사동 애드립에서 ‘문구온더가구’ 그룹전시에 도자기 소품들을 전시하였다. 왕성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깊이를 만들어가던?4월경에 ABSOLUT City Canvas 프로모션의 제안이 들어와 아티스트들과 문래동에서 벽화작업을 하며 4~5월을 보냈다. 지역 예술활동에 디렉터로서 임무를 받고,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벽을 얻기 위해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주변 철공소 사장님들과의 관계도 확장되었다. 벽화작업과 촬영으로 한창 바쁘던 5월에 예정된 닥터박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치뤘다. 바쁜 일정으로 회화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를 어시스턴트로 기용하였는데, 시스템은 생각했던 것처럼 잘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했던 아크릴 페인팅은 디지털프린팅으로 대체했다. 개인전의 판매는 실망스러웠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지만, 상업갤러리인만큼 보다 왕성한 판매와 매체보도를 기대했는데, 욕심에 미치지 못했다. ABSOLUT의 벽화 작업도 아쉬움은 남았지만, 나의 100%를 다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다만 내가 만드는 이미지들의 한계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Onstyle의 <스타일로그>라는 프로그램 출연으로까지 이어졌고, 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계기였다. 폭풍과 같은 4, 5월을 보내고 7월에는 코엑스에서 펼쳐지는 핸드메이드코리아에 초대부쓰로 참가했다. 스타일로그가 방영되고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팬이라고 얘기해주는 분들이 건내는 인사가 반갑고 고맙고, 큰 힘이 되었다. 16000원 짜리 도자기 토이를 10000원에 할인하는 등, 판매촉진을 위해 힘써봤지만, 판매량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초대부쓰라고 한들 운송비도 들고, 프린트비용도 들고, 알바생도 쓰게 되고, 이래저래 돈이 든다.

8월에는 대안학교 학생(고등학생)이 인턴으로 1개월 동안 도와줬다. 인턴을 쓸 사정은 아니었지만, 업무체험 프로그램으로서 무급으로 일하겠다는 학생의 강력한 요청과 1년전 인터뷰를 통해 맺은 인연으로 어시스트업무를 수락하였다. <메이드인문래>프로젝트 준비도 임박하여 일을 나눠서 작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도 익숙치 않은 친구라, 나눠줄 수 있는 업무가 생각보다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육체노동 위주로 일을 분담시켜줬다. 그것만도 큰 도움이었지만, 그에게 가르켜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그의 삶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메이드인문래> 프로젝트의 메인 오브제는 몇번의 디자인변경을 거쳐 제일기공에서 주문했다. 형제목형을 이용한 알루미늄 주조 방식으로는 예산을 맞출 수 없었다. 콜라보레이터들과 협의를 하며 결론에 다가갔다. 여러 협업자들과의 진행은 쉽지 않다. 회사의 고용이 아닌 이상, 그들의 모티베이션은 돈 또는 저자성으로 고취시켜야 하고 적절한 선에서 결과물에 대하여 만족하여야만 한다. 한 회사의 팀처럼 푸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열정이 다르고, 말을 통해 서로가 꿈꾸는 결과물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시 준비 기간에 작업실 이전과 개인적인 사고가 겹쳐 창작의 텐션을 유지하기 힘겨웠다. 전시의 준비가 부족하다보니 퍼포먼스를 구상하기 어려웠다. 작품의 전체 설치가 정리될 즈음부터 퍼포먼스에 관심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고나니 3~4일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리허설 전날까지 섭외를 하여 결국 퍼포먼스는 워크샵 수준이 되어버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큰 실패없이 9월19일 <메이드인문래>를 설치, 공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준비가 미흡하다보니 손님 초대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로 인해 관객도 적었던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립현대미술관 분들이 들러서 작품을 본 것은 큰 소득이었다. 우연히 들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분들이 전시준비를 보았고, 공연날에 까지 다시 와서 봐주었다. 이분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그룹전시에도 초대해주었는데, 이는 아티스트 커리어로서는 또 하나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MEET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의 화두를 받고 작가로서의 새로운 씨앗을 낳았으니 진정 감사할 일이다.

이태원 공간으로 작업실을 옮기고서는 작업실을 안정화시키는데 또 다시 시간을 들였다. 청소를 하고, 화분을 사다놓고, 책상의 위치를 잡았다. 윗층에 갤러리가 있고, 아랫층에 작업실이 있는 구조인데, 갤러리 공간의 온라인 홍보와 사진촬영을 조건으로 작업실을 무료로 사용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갤러리의 업무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약속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0, 11, 12월은 급료를 받고 갤러리의 일을 도와줬다. 사연많은 공간이라 스트레스는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1월까지 지원 업무를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 세달 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업무와 팀원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즐겁긴 하다.?

2015년
1월에 에브리데이 몬데이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 White Mountain을 전시하고 있는데, 페인팅도 디스플레이도 영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에브리데이몬데이는 기회를 줬고, 내 준비가 부족했다.
2월16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사물학Ⅱ-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에서 <메이드인문래>를 선보인다.
4월말에는 Pictoplasma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다녀올 예정이다. 강연과 전시가 예정되어있는데, 페인팅을 명확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좋은 경력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찬스인데, 많은 것으로부터 쫓기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루마니아로부터 온 인터뷰 메일에 회신하지 않은 것부터가 문제.
9월에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초대되었다. 알랭드보통과 협의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인데, 공예가 염승일로 들어가있던 보도자료를, 현대미술가 염승일로 고쳐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것이 나의 현재의 정체성이 아닐까? 지난주 목요일 알랭드보통을 처음 만났고 9월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다. 2월 4월 9월 이 시간들에 대중과 미술계에 어떤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시간을 빗겨난 시간에 어떤 사업을 일으켜 또 어떻게 성과를 잘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숙제다.

3번의 굵직한 전시가 잡혀있다. 누군가는 분명 부러워할만한 이력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해외초대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 좋은 신호다. 항공료, 체류비까지 받으면서 해외에 전시초청을 받는 것은 내가 어렸을 적 꾸었던 꿈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직 불안한 경제상황이 숙제다. 내가 나의 이름으로 살고, 스스로가 업(業)을 일으켜 자립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올 한해 경제적인 압박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동시에 고민하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디자인이 가능한 아티스트 스튜디오로 다시 한번 변모해나갈 계획을 잡고 있다.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상의해야겠다.

2015년. 또 힘차게 삶의 진전을 만들어 가고 싶다.

실행에 앞서 계획했던 부쓰의 디자인

실행에 앞서 계획했던 부쓰의 디자인

동료작가의 추천으로 핸드메이드페어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핸드메이드페어라는 잡화적인 감각이 내가 지향하는 미술의 방향과 다소 거리가 있어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참가를 결정하였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시티캔버스 프로젝트를 쉼없이 진행하고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고, 작업실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이라 페어 준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시간을 허비하고 1주일을 앞두고서야 전시방향이나 레이아웃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yomsnil-handmade-fair-3
스텝

7월 9일(설치), 10, 11, 12, 13일의 일정이었다. 모든 날 아르바이트 스텝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다소 사치스럽지만, 대중과 마주하는 현장에서 보다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모든 날에 스텝을 두었다. 나 혼자서 부쓰를 지킨다면 화장실도 마음놓고 갈 수 없고, 부족한 그래픽이나 재료를 순발력있게 준비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설치당일과 금요일(9,11일)에 이현영, 목요일(10일)엔 국민대 조형대 후배, 이진선, 설치포장과 주말양일(9, 12, 13일)엔 김현지가 도와주었다. 나의 요구에 따라 스텝들이 역할을 했지만, 각자의 개성에 따라 관객에 대한 접근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후배들이란 이유로 적은 일당에도 수고해주어 감사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식대를 합치면, 30만원 정도의 인건비가 발생한 셈이다. 좋은 관계의 잠정적인 스텝을 만드는 이 돈이 물론 아깝지는 않지만, 무료로 제공받은 부쓰를 운영함에도 이렇게 돈이 들었다는 것은 기억해둬야겠다.

sticker
스티커 제작
80x80mm 강접 스티커를 ?10만6,700원에 4000장을 뽑았고, 10일 아침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오토바이착불(1만원)로 주문했다. (http://www.printocean.co.kr/sticker/kind_price06.php) 그런데, 이 업체는 시간도 못맞추고, 전화통화에서 내가 주문했던 톰보로 완전히 잘라내는 원형컷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결국 이 재단선이 드러난 스티커를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얼마나 기분이 씁쓸하던지… 역시 모든 것은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한다. 커뮤니케이션과 프린트 미스는 노력을 해도 언제나 발생 가능하다. 더 세심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체크해야한다.

table-painting
테이블

작업대로 사용하려고 만들었던 하나의 다리 유닛을 작은 테이블로 썼다. (350 x 600 x 900 mm ) 원래는 내가 이 테이블 앞에 서있을 생각이었는데, 하루종일 서있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던 것인가?)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기본 테이블과 의자를 사용하고, 가지고 간 테이블은 장식대로 활용하였다. 작업대는 도색을 안했었는데,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흰색으로 분채도장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로 번거로워서 그냥 무광백색 스프레이 4캔(8천원)로 대체했다. (테이블 다리 하나 제작에 2만원, 분채도장은 원래 3만원- 잘 할인받으면 2만원, 580 x 580 x 690 mm의 비슷한 스펙의 다리가 기성품으로 4만원이니까, 새로 제작을 할때는 기성품을 활용해야겠다. –링크참조?)

마케팅
적극적인 판매를 위해 크게 가격표를 적어서 두었다.?첫날 오후부터 가격인하를 했다. 원래는 프리미엄전략이랄까? 가격인하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좀처럼 없는 기회이고, 더 많은 대중에게 기쁨을 주고자(?), 가격인하를 시도해보았다. 35,000원의 금장 하피는 그대로 두고, 16,000원의 하피돌을 10,000원으로 전격 할인. 다음날엔 스노우맨티캔들 스탠드도 57,000원의 정가를 55,000원으로 할인했다. 오전과 오후를 비교해보면 분명 10,000원 짜리 상품을 만든 것은 효과가 있었다. 우리 부쓰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가능하도록 해두었지만, 여전히 신용카드는 중앙계산처에서 결제를 하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거스름돈 없이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사용하여 구매가 가능한 것은 심리적인 경쾌함도 있었다. 페어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현금결제였다. 지인의 의리구매도 50%이상 있었다. 의리구매의 비율이 많은 것은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안타까운 것인데, 의리구매라도 품질이 형편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일테니, 스스로 자위한다.

yomsnil-handmade-fair
G패드 디지털 디스플레이

판매 위주의 소품들이 중심을 잡다보니 내 작품들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디스플레이. 깔끔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태블릿 패드를 구매했다. 중고 아이패드를 살까도 했지만, 파일이동이 편리한 안드로이드 기반,?가장 합리적인 가격의 G패드를 구매했다. 디스플레이를 깔끔하게 보여주기 위해 자작나무 합판(12T)을 CNC가공하여, 틀을 만들었다. (G패드 30만원, 서원CNC컷팅 3만5천원) 이전부터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활발히 활용할 수 있는 매체이므로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사진을 슬라이드쇼 형식으로 보여주었는데, 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동영상과 제작과정은 가로 디스플레이가 적당하고, 작품사진은 세로 디스플레이가 적당하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야할까? 여전히 세로가 될 것 같다. 미리 사진들을 비례에 맞게 크롭핑해두자.

프린트
가격표는 총 세번을 출력했다. 560원 x 2번, 칼라 1500원 x 1번. 가까운 곳에 킨코스가 있어서 그나마 순조로웠다. 로고는 시트컷팅을 하려다가 A2사이즈 PET인쇄를 했다. (350 x 350 mm짜리 로고) 15,000원. 로고의 크기가 맞춰져있어서 이번에 뽑았던 로고를 다른 곳에서 재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시트컷팅이 더 좋았을까? 철물로 로고를 만들어두자.

yomsnil-handmade-fair-2
관객과의 만남/ 라이브페인팅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고,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페이스북으로 잘 보고있다는 인사를 해준 사람들이 많았고, 스타일로그에서 봤다고 수근거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TV에서 봤기때문에 연예인을 본 것 같다는 피드백도 재밌었다. 그림에 집중하느라 모든 사람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거나 살갑게 다가가진 않았다. 관람객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것이 구입에 대한 권유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적절한 수위를 조절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스텝에게 기대했는데, 현지가 그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극적이었다. 많은 관람객, 팬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팬이라며 어머니와 함께 오신 관람객이 인상적이었다. 동료작가나 관람객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되니 좋은 신체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 날 사진에 들어나는 피로한 표정이 안타깝다.

어쨋꺼나 기존의 전시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행사를 치뤘고, 좋은 경험의 자산이 되었다. 다음에는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부담없이 진행할 수 있는 라이브페인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기회를 맞이하여, 정해져 있는 시간과 환경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보여주려다보니 큰 행사를 앞두고는 늘 잠을 줄여가며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번에는 개인전, ABSOLUT 예술지원 사업과 방송출연이 겹쳐, 바쁘고 극도로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평상시에 마시지 않던 카페인드링크도 마셔가며 수면부족의 상태로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바빴던 이 시간들을 시간순으로 회고하고 반성해본다.

개인전
5월14일은 개인전이 잡혀있었다. 설치는 5월11일. 지난 전시로부터 6개월만인데, 그 동안 만들어낸 도자기와 함께 이번에는 페인팅 작품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Transform Today
개인전을 준비하는 중에, 5월17일이 데드라인으로 잡혀있는 ABSOLUT의 Transform Today 예술후원 제안을 받았다. 시일이 겹쳐서 다소 무리한 스케쥴이었지만, 매력적인 제안이었기에 흥쾌히 수락했다. 거리를 예술로 바꾸는 프로젝트이고, 서울의 3개 장소가 정해진 상태였다. 처음엔 예정지로 연남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나의 작업실을 포함한 문래동에서 예술활동을 펼칠 것을 역으로 제안했다. 문래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몇몇 작가들을 컨택했고, 광고주에게 시안을 제시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Absolut

근 2주 동안은 벽화를 그릴만한 건물의 건물주와 인근 사장님들과 대화를 통해 벽을 섭외했다. 동시에 작가들과는 작품의 방향성과 표현방식을 조율했다. 표면으로 들어나지는 않지만, 이는 상당한 시간이 들고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벽에 흉측한 그림을 그리면 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콘트롤하려 들다보면 작가들에게 또 욕을 먹는다.

문래동 철공거리의 좁은 골목 사정 상, 벽화 작업은 주로 주말에만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나는 평일에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주말에는 벽화작업을 할 계획을 세웠지만, 평일에도 커뮤니케이션 업무로 좀처럼 내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벽 섭외과정을 거쳐 5월3일 첫 작업을 개시하였다. 첫날은 벽과 골목을 청소하고, 어두운건물을 흰색이나 회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면서 환경개선을 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아티스트들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각 아티스트들이 원활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을 하거나 물감을 준비하고, 주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서포트업무를 이어나갔다.

0503

5월10일
개인전 설치 하루 전이었으나, Transform Today의 촬영이 잡혀있었다. 11일(일요일)은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도 있었고, 나의 개인전 설치날이기도 했기에 토요일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나는 당일 3명의 어시스턴트를 기용하여그림을 시작했고, 3명 정도의 작가들이 골목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날은 Transform Today 광고제작팀과 STYLE LOG 방송팀이 촬영을 왔다. 내가 그리는 그림 하나에 10여명의 촬영스텝이 매달려 찍고 있다보니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마르는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림의 진척은 더뎠다. 그런 압박 속에 9시반에 출근한 어시스턴트들을 점심도 먹이지 않은채 오후 5시까지 일을 시켜버렸다. 해가 지기전에 두번의 인터뷰까지 마치고 나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날의 어시스턴트 중 2명에게는 다시 부탁하여 밤까지 개인전 도자기 포장을 함께 했다. 그 둘은 9시반부터 일을 시작하여 10시반에 퇴근했으니 엄청난 노동강도였을 것이다.(반성중…) 덕분에 무사히 포장을 마쳤고, 나는 밤사이에 캔버스에 바니쉬를 작업을 했다. 철야를 하고서 다음날 아침 8시 양평 닥터박 갤러리로 출발하여 무사히 설치를 마칠 수 있었다.

0510

5월14일
STYLE LOG작가들과 회의를 하고, 콘티를 받았는데, 나의 작업실에 오렌지캬라멜의 나나가 방문하고, 나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촬영 이틀을 남겨두고 작업실을 다시 꾸며야할 필요가 생겼다. 제 아무리 낮은 시청률이라고 해도, 방송에 나가면 누군가는 볼테니, 잘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촬영을 위해 작업실을 꾸미는 것은 새로운 모티베이션을 주었다. 또다시 열성적으로 작업실을 꾸몄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번째가 되자 지난번보다 훨씬 편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나의 과장된 연기에 스텝들도 만족하는 눈치였다.(ㅎㅎㅎ)

나나와 염승일, Yomsnil

5월17, 18일
다시 맞이한 주말. 작가들의 그림을 진행시키고, 나는 인쇄물 형식의 벽화를 부착하였다. 오후엔 공중퍼포먼스팀 ‘날다’와 구체적인 리허설을 진행하였다. 최종적으로 천과 공으로 율동감을 만들고, 색깔있는 의상으로 구성을 하기로 했다. 가장 큰 벽은 서기원 작가에게 하나를 더 부탁하였고, 나도 하나를 맡았다. 내가 밑그림을 그린 후, 두명의 어시스턴트에게 채색을 맡겼다.?이날 역시도 만족스럽지 못한 스피드였다. 나의 그림도, 기원이의 그림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촬영은 20일로 정해져 있고, 더 이상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날이 져물고, ?과감하게 붓을 놓아야 했다.
0518

5월20일
월요일엔 날다팀의 의상을 준비했고, 나나와 함께 그렸던 그림의 개선작업과 나나를 위한 헌정작품을 준비했다. 디자인을 하고 그것의 시트지까지 주문하여 스프레잉을 해야하니 빡빡한 스케쥴이었다.?나나와 함께 만드는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했지만, 나나와 함께 만든 작품을 퀄리티 높게 완성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나나를 위한 기념작품에 더 정성을 쏟았고, 그런대로 귀여운 레터링 작품이 나왔다. 촬영전날 저녁까지로 약속했던 신사장의 셔터입구 쪽 개조가 지지부진했다. 신사장은 약속한 시간을 못지켰고, 촬영당일 아침에야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부족하나마 이 역시 영상에 그럴싸한 정도에서 작업을 끊고, 상층부가 갤러리로 기능하도록 그림 설치작업을 부탁하였다. 당일 아침 어시스턴트, 현영이에게는 미리 준비한 시트컷팅지를 주고, 스탠실기법으로 그림에 캡션을 달도록 부탁하였다. 나는 10시부터 문래예술공장에서 윤지수가 만든 의상을 체크하고, 발레리나들과 안무를 짰다. ?11시반에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STYLE LOG의 세명의 MC와 촬영을 시작했고, 작업실 앞과, 나의 Metropolisaurs Attacks!! 작품 앞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0520-1

대사들을 보다 부드럽게 처리했을 수도 있었을텐데,시간관계상 빠르게 촬영을 진행했다. 문래동 거리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다시 문래예술공장으로 돌아가 발레팀과 날다팀의 공연을 완성시켰다. 이미 오브제들이 완성도를 갇추고 있었고, 하늘에서 공연하는 날다팀의 퍼포먼스자체가 볼거리여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던 3주간의 긴 마라톤(!)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고, 부족한모습이지만, 이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아직도 생각할 꺼리들이 남아있다. 그것들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 다시 정리해보겠다. ?여하튼 이렇게 글로 한번 근래의 일들을 정리하여 적고나니 이 일이 제대로 끝난 것 같다. Style Log방송은 온스타일 채널에서 6월6일 저녁9시에 첫방송이 나가고, ABSOLUT의 온라인광고는 6월13일부터 시작된다.